본 발표에서는 러시아에서의 한국학의 발전 추이를 한국학 전통분야를 중심으로 간략히 조망하는 한편 최신 연구동향과 주요결과, 그리고 특별히 한국학 연구발전에 기여가 큰 주요 연구자들에 대해 살펴보겠다.
러시아 한국학의 특징
한국학은 동양학이라는 복합적 학문에 속한 독립 연구분야로 지리, 역사, 문화, 인문(언어·문학), 철학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 그리고 그 외 한반도 전체와 남·북한 각각의 모든 현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연구주제를 모두 포괄하는 학문이다. 러시아에서 한국학이 발전한 객관적 전제 조건은 아래와 같으며 이것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첫째, 아시아 대륙의 동부와 태평양 연안에 연결된 한반도의 지리·지정학·민족지학적 위치. 한반도의 이러한 위치는 대륙과 섬 문화의 교차점에 위치한 한민족의 정치·문화 발전의 역사적 경로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비롯한 접경국의 발전을 결정하는 요소이다.
둘째, 한·러 양국의 오래된 정치·경제·문화 관계.
셋째, 러시아의 극동 정책에 있어서 유라시아의 강국으로서의 한반도 역할의 중요성.
넷째, 19세기 후반 이후로 다민족국가 러시아에서 거주하고 있는 러시아 한인.
다섯째, 아태지역 문명에 대한 관심과 아태문명 속 한국이 갖는 중요한 위상. 러시아의 아태문명에 대한 관심은 이국문명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점차 학술적이고 실용적으로 변모했다.
러시아 한국학의 전통적인 학문 분야는 언어, 문학, 문화의 인문학, 역사(최신역사 제외), 지리학으로, 여기에는 다음의 두 가지의 특징이 있다. 하나는, 양국 국민의 거리를 좁히고 상호적 풍요에 기여하는 인문학으로서 아카데미와 대학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러시아 사회에 한반도와 한민족을 소개하며, 태생부터 러시아 과학, 문화, 문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비록 한국학 전문가들은 아니었으나 저명한 러시아 학자, 문화 활동가 및 작가들은 한국학 연구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한국학의 하위 분야 형성
한국학의 하위 분야는 여러 시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 17세기 말 러·중의 관계형성과정에서 태동한 한국학은 공식적인 한·러 관계가 시작된 19세기 말에 독립적인 발전을 시작했다. 1917년 러시아의 10월 혁명, 1919년 한국의 3.1운동 이후 한국학은 소련국민에게 있어 한국인의 독립운동에 지지를 표하기 위한 주요 수단이었다. 고려인 중심의 한국 사회주의자들의 다수는 스탈린의 탄압이 있었던 1930년대 중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가 단행된 1937년에 사망했다. 이로 인해 한국학은 1945년 해방 이후 많은 부분에서 새로 시작해야 했다.
언급한 이유로 한국학은 이란학, 중국학, 터키학, 일본 등 기타 동양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생학문에 속한다. 그러나 현재는 동양학 중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쌓은 선두 학문으로 러시아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학은 모든 한·러관계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영향은 계속될 것이다.
첫 번째 단계: 첫 번째 발전 단계는 1945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로, 역량과 지식의 축적 단계로 부를 수 있다. 학술저널과 언론에 한국관련 논문과 기고문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저자들은 중국, 일본, 아시아 국제관계학 전공 학자였고, 그 외 언론인 등도 있었다. F.I. Shabshina, G.D. Chagai, G. F. Kim, M.N. Park 등 대표적인 러시아 한국학자들이 이 시기에 등장하여 첫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두 번째 단계: 두 번째 단계는 195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말까지로, 성숙과 번영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대학 및 대학원을 통해 전문교육을 받은 수십 명의 젊은 연구 인력이 배출되면서, 한국학의 경계가 확장되고 학문적 깊이가 더해져 한국학이 빠르게 성장했다. 이를 배경으로 한국학은 역사, 경제, 정치, 문화, 문학, 언어학 등의 독립적인 하위 분야로 세분되었다. 각 분야마다 다양한 학술센터 출신의 연구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일반 한국학 외에 특수한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이었기에 전반적인 연구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했다. 당시의 다분화된 학문 구조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두 번째 단계의 가장 큰 특징은 남·북 연구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앞의 첫 번째 시기에는 북한관련 연구가 남한연구를 수적으로 압도했으나 이때부터 그 중심축이 꾸준히 남한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현재 러시아의 북한연구 중에는 주목할 만한 연구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 같은 현상은 다음의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남한은 꾸준한 경제성장, 독재체제에서 민주주의체제로의 극적 전환, 현대화를 이뤄 학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남한에서 출판된 공식 출판물, 일반 문학, 언론지 등은 풍부한 학술연구 자료가 되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1960년대 이후 학술지, 언론지 출간이 지속적으로 감소한데다, 그마저도 객관성이나 내용이 크게 떨어졌다. 또한 주체사상에 기반 한 북한의 정치체제가 북한 국내정치나 국제정치에서 보여준 노선이 더 이상 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되면서 결국 북한연구는 활성화 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한계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근대 러시아 한국학의 발전에 있어 가장 결실이 큰 시기였다. 한반도 전체 역사, 남·북 국제관계, 문화, 문학, 언어에 걸쳐 수십 권의 책과 수백 편의 논문이 출간되었다. 대부분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동양학 연구소에서 출간된 것으로, 이 중에는 두 권으로 된 한국학 기초입문서 한반도의 역사도 있다. 이 책만큼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은 세계 한국학에서 아직까지 찾아볼 수 없다. 한반도의 역사는 한반도에 대한 광범위하게 소개뿐 아니라 동양 전체의 역사와 문제에 대해 포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세 번째 단계: 이 시기는 90년대 초반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로, 러시아 한국학의 현재라고 할 수 있다. 1990년 소련이 마침내 그간 남한을 인정하지 않던 태도를 버리고 남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1991년 소련이 몰락하자, 이와 더불어 전 세계 사회주의 체제도 무너졌다. 이후 러시아의 경제는 쇠퇴했고,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했으며 국가의 학술연구지원도 최저수준으로 감소했다. 그 여파로 한국학을 포함한 인문학이 치명타를 입었고 한국학의 주축을 이루던 주요 한국학자들의 다수가 한국학을 떠나갔다. 학자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자 젊은이들도 학문의 길로 들어서기를 꺼려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에 한국학을 시작한 비교적 소수의 학자들은 연구 활동을 지속했지만 이들 외에 다른 연구 인력은 크게 줄어들어 향후 전망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문헌 구입이나 외국학자 초대, 학술대회를 위한 출장 및 학술대회 개최를 위한 학술지원금이 극히 제한되었고 학술서 출간을 위한 재정지원도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 같은 부정적인 면 외에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과거 학문에 가해졌던 엄격한 검열과 사상·정치에 대한 제한이 사라졌다. 또한 과거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대량의 아카이브가 개방되었고 특히 남한을 비롯한 해외 연구물의 유입도 증가했다. 국제교류재단(KF)이나 몇몇 대학도 러시아 학술센터에 큰 도움을 주었다.
북한을 제외한 여러 나라로부터 한국 관련 자료가 유입되었고 남한의 학자를 중심으로 한 학술교류가 활성화되었다. 또한 남한 등 해외 학술센터와의 협력가능성, 해외 학자들과 경험이나 지식을 교류하며 세계적인 학술결과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났다. 아카이브 문헌과 외국 문헌을 통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한국역사를 알게 되었다. 새로이 확보한 연구들을 통해 연구의 시각도 새로워졌고 더불어 기존의 개념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정들은 향후 러시아의 한국학 발전에 있어서도 중요한 방향점이 될 것이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학술논문을 제외하고도 280권 이상의 학술서가 출간되었다. 절반 이상은 한국 역사와 문학, 언어, 소련 및 러시아 한인의 상황과 관련된 것이다. 이 중 1990년부터 2000년대의 한국에 관한 책들은 과반수가 현시대의 현안과 관련된 것이다. 현재 한국학 연구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사실상 이미 오래전부터 나타난 추세로, 남한연구와 북한연구간의 수적 격차가 더 커졌다는 것이다. 현대를 주제로 한 연구 중 다수는 남한, 한·러 관계, 평화통일에 대한 남·북한 정책 연구에 집중되어있다. 불과 두세 권의 책들만이 북한연구를 다루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한·러 양국의 직접적·적극적인 관계가 불과 1990년대에 시작된 만큼 남한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고도의 개혁의 길을 찾고 있는 러시아가 그러한 개혁을 이룬 남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 외에도 남한의 과거와 현재의 발전에는 복잡하고 중요한 학술적 문제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연구하려면 충분한 자료들이 있어야 한다. 반면, 오랫동안 북한은 통계 자료를 발표하지 않아, 북한의 내부 정책과 그 결과, 북한의 실상에 대해서 신뢰할 만한 정보가 거의 없다. 1990년대 초반 러시아 사회에서 사회주의의 이론과 실천, 특히 북한식 사회주의 모델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감소했다는 점도 중요한 원인이다.
저자 중에는 러시아 아카이브나 러시아에서 발간된 자료들을 토대로 연구하는 남한의 학자들도 있다. 러시아의 한국학 연구센터나 대학에서는 한국사와 현안에 대한 학술대회를 열고 있고, 새로운 학위논문들도 나오고 있다. 모두 러시아 한국학이 막대한 창의적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한반도 국제관계 문제와 열강들의 한반도 정책에 대해 학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관련 자료가 개별 논문이나 책의 한 소제목에 불과했다면 현재는 온전한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물론 가장 많이 다뤄지고 있는 주제는 한·소, 한·러 관계사, 남·북한과 러시아의 현대적 상호관계에 관한 것이다.
과거에도 소련의 한국학자들은 한반도에 있어 가장 중요한 평화통일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논의한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도식에 가까웠고, 무엇보다 일방적이었다. 즉 북한의 입장을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기술하고 북한만이 옳다고 평가했으며, 반대쪽의 정책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검토도 하지 않은 채 모두 거부했다. 또한 이와 관련해 대규모 특별 연구도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2000년대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한반도 분열의 대·내외적 요인을 분석한 전문 서적들이 출시되었다.
책의 저자들은 평화통일에 대한 남·북한 양측 모두의 제안과 구체적인 조치들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이해 당사국들의 입장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남·북한의 평화 프로그램과 실질적인 조치에 대해 저자들마다 공감과 신뢰의 정도가 다양하지만 이들이 제시한 정보와 논거를 통해 한반도 통일 프로세스의 현황과 추이에 대해 보다 심도 있고 객관적인 논의가 가능해졌다.
남·북한의 경제·정치 현안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 포스트산업시대로의 전환을 결정짓는 남한경제의 주요 동향 분석, 한·러 과학기술 협력의 전망, 동북아에서의 지속가능한 안보문제와 한반도 상황의 상호관계, 남·북·러 관계, 한반도 핵문제 해법, 남·북 관계(남·북한 관계 안정화 및 남·북한 대화 재개) 및 기타 현안들이 흥미롭고 내용이 알찬 저널 한반도 현안(M., 1991)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연구소와 기타 학술센터에서도 같은 목적으로 몇 차례에 걸쳐 학술대회를 열었다.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자료들은 오늘날의 한반도 연구 및 발전 전망을 분석하기 위한 데이터로 쌓이고 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동양학연구소 산하 한국·몽고학과에서는 북한 내부진화에 대한 연구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북한은 “한국식” 사회주의 건설 노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북한의 환경에 맞춰 수정한 시장지향개혁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남한의 집약적이고 다층적인 현대화 연구는 근래에 전망 높은 주제가 될 것이다. 또한 비록 규모는 가장 작지만 한반도 역사 연구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의 새로운 시대 연구는 B.D Park이 집필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친 러시아의 대 한반도 정치사 연구에서 가장 먼저 소개됐다. Park은 2004년 러시아와 한국의 두 번째 증보판을 출간했다. 이 책은 현재까지의 양국관계 연구서 중 가장 방대하고 포괄적인 연구다. Park은 자신이 쓴 기존 연구서인 1860-1888 러시아 외교와 한국Ⅰ(1998), 1888-1897 러시아 외교와 한국Ⅱ(2004)의 자료와 아카이브 자료에서 찾아낸 새로운 자료들을 이번에 대폭 추가했다.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러시아가 한반도에서의 일본의 팽창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Park은 초기 한·러 관계를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한편, 한·러 관계 발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러시아 외교관의 전기를 재구성하였다. 한국과 서양의 첫 번째 문화·외교적 만남이라고 할 수 있는 20세기 초 러시아 원정대의 한국 탐사 연구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체계적·심층적인 한국학의 시작이자 실질적인 한국학의 성립이라고 할 수 있다. B.B. Park의 외교관 K.I. 웨버와 한국(M., 2013)은 최근 출시된 연구 중 하나이며 곧 1898-1910 러시아 외교와 한국(B.B. Park)이라는 두꺼운 책도 완성될 것이다.
재러 한인사 역시 중요한 주제이다. 러시아 한인들(주편집자 B.B. Park) 시리즈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 문화사는 러시아 학자들이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주제로, 주요 단계별 시기·방향·중요 업적들은 모두 한국사 총서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M.V. Vorobieva의 저서 한국 문화 에세이(2002), I.A. Tolstokulakova가 쓴 교재 한국 문화사 에세이(2002)에도 그간 축적된 학술자료들을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보다 심층적이고 포괄적인 한국 문화사 연구가 필요하다.
최신 역사
러시아 한국학자들이 많은 관심을 표하고 있는 주제는 한민족의 민족해방투쟁사다. 1998년 B.D. Park과 박태근이 공동으로 쓴 러시아 외교관의 시선으로 본 3․1 운동의 출판은 러시아 한국학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책에는 1919년 3월부터 1921년 3월까지 서울에 있었던 주한 러시아 총영사 류시(lutsh)의 보고서가 담겨있다. 류시의 보고서는 시위대의 막대한 규모, 시위 참가자들의 헌신과 영웅심, 일본의 잔인함을 잘 보여준다. 1999년에는 모스크바에서 3․1절 80주년을 기념하여 남한 학자들이 함께 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학술대회 후 발간된 3․1운동, 새로운 조명(1999)이라는 논문집을 통해 기존의 결론과 평가에 대해 비판적 검토를 시도하였다. 모든 저자들이 만장일치로 3․1운동의 역사적 의미, 그리고 세계인류해방운동이나 한반도의 운명에 있어서 3․1운동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01년은 또 하나의 대규모 항일운동인 6·10 만세운동의 75주년으로, 한국 역사에서 빛나는 이 한 페이지를 위해 모스크바에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으며 1926년 6·10 만세운동. 발표논문집(2003)이 러시아어와 한국어로 발간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듯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도 오랫동안 소련사회과학을 지배한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어느 정도는 받게 마련이다. 이에 식민국과 속국의 진정한 대변자, 민족의 자유와 더 나은 삶을 위해 싸우는 투쟁가는 공산주의자나 이들과 가까운 좌파뿐이고, 독립 운동가들은 신생 노동계급으로 여겼다. 민족주의자들은 이와 반대로 부르주아를 대변하는 가짜 애국자들로 몰려 제국주의와 타협하는 민족의 배신자로 인식했다. 이러한 이유로 민족주의자들의 활동은 대개 부정적으로 평가되거나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독립운동의 형태와 방법 중에서 가장 큰 지지를 받았던 것은 급진적인 무력 저항방식이었다. 따라서 3․1운동 발기자나 민족대표들은 3․1 운동 당일에는 ‘겁쟁이’였다거나 봉기한 민중의 배신자로 취급되어 대개 비판적·경멸적 평가를 받았다. 또한 당시 민족지도부가 나약하여 적극적인 독립운동에는 무관심했다고 결론 내렸다. 한편 3‧1운동 이후 민족지도부는 대중의 눈에는 지도자 역할을 상실한 것으로 비춰져 그 역할은 노동계급이나 그 선봉대인 공산주의자들에게 이양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일본의 제국주의에 굴복한 민족개혁주의자들이었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영향으로 코민테른(Comintern)에 관한 자료 등이 꾸준히 개방되자 한국 공산주의 운동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주제는 북한 공산당의 독점적인 학술특권이었을 뿐 소련에서는 이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았다. 한국 공산주의에 대해 최초로 관심을 보인 사람은 F. I. Shabshina다. 그녀는 1988년 1918-1945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에서 북한의 공식 콘셉트를 포함한 모든 개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Shabshina는 한국 공산주의운동의 시작과 발전의 역사를 재창조함과 동시에 공산주의운동의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분석하고 한국 공산주의자의 단점과 실수, 그리고 그들이 주도한 코민테른의 결점에 대해 규명했다. Shabshina가 내린 종합적인 결론은, 공산주의자들이 당시 시대적 상황에 기인한 세력약화와 일본당국의 잔혹한 탄압을 겪으며 막대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세계적인 지지 속에 사회주의 혁명(인민민주주의혁명)을 주도하는 실질적인 능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Shabshina의 책은 비밀문건으로 출간되었으나 곧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L.A Usoba가 1918-1945 한국의 공산주의 운동. 미국 문서와 코민테른 문서(M. 1997)에서 Shabshina의 연구를 보강했다.
B.D. Park의 1918-1925 소련, 코민테른, 그리고 한국의 독립운동 –에세이, 문헌, 자료(M, 2006)는 소비에트러시아에서 한민족단체들과 천도교가 3‧1운동을 지원한 것과 관련해 소련과 코민테른이 취한 정책에 대해 연구한 책이다. 1918~1925년 한국사회주의, 공산주의운동의 기원과 발전의 역사는 사회학의 특별 연구 주제이다. B.D. Park은 소련 및 코민테른이 한국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친 사실이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고 했다.
2017년 러시아 한인 시리즈에서 B.D. Park이 시작하여 그의 사망 후 B.B. Park이 완성한 남만춘이 출판됐다. 이 책에서는 한국 공산당 창립자 중 한 사람인 남만춘의 정치적 생애를 재조명했다. 또한 한국 공산주의의 형성 및 여기에 미친 외국의 영향, 공산주의 단체 사이 노선투쟁의 원인 및 성격, 한국 독립운동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위상 등 공산주의자들의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이미지를 재구성했다. 그 외 조선공산주의 운동에서의 코민테른의 역할에 대해서도 평가를 내렸다.
한국사 총서
최근 재러 한국학자들의 노력으로 한국사 책 3권이 동시에 출간되었다. 한국사 강의, 고대부터 20세기말까지(S.O. Kurbanov, 2002), 한국사 제2권, 고대부터 1876년까지(V.M. Tikhonov, 2003), 한국사(새로운 시각)(2003, A.V. Torkunov 편집)이 그것이다. 이 책들은 모두 대학 교재들로, 과거의 이론적 시각이나 방법론에서 탈피하여 몇몇 개념, 특히 한국의 최신 역사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책들이 등장하게 된 것은 변화하는 시대의 새로운 가능성과 새로운 요구에 맞춰 러시아 한국학이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학자들
러시아 한국학은 전 세계 한국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모든 시기마다 학문의 발전에 삶의 대부분을 바친 수십 명의 학자들의 노고가 있었다. 1970~1990년대 등장한 학자들 가운데 한국사, 현대 경제·정치 연구에 있어 현저한 업적을 세운 사람들로는 Asmolov K.V., Bazhanov N.E., Volkov S.V., Voronotsv A.V., Denisov V.I., Zhebin A.Z., Zabrovskaya L.V., Kurbanov S.O., Lankov A. .N., Matsegora A.I., Mikheev V.V., Pak B.B., Suslin S.S., Toloray G.D., Tolstokulakov I.A., Torkunov A.V., Usova L.A., Shin, I.A. 등을 꼽을 수 있다.
한국학 주요 센터
과거와 마찬가지로 주요 한국학 연구센터는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다. 이외 한국학이 성장하고 있는 지역은 노보시비르스크, 하바롭스크, 우수리스크, 이르쿠츠크, 크라스노다르, 사할린 등이다. 현재 3개 이상의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최근 시베리아와 극동지역 도시의 비인문학대학에서 한국어 교육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 지역이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만은 아니며 남·북한과 실질적인 경제·문화 관계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아직까지는 한국학 전문가 양성 수준이나 한국어 교재의 수준이 높지 않지만 향후 젊은 한국학자들이 이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러시아의 한국학을 인위적으로 나눠본다면, 학술연구 분야(아카데미 연구소와 대학), 교육분야(국립 및 사립 고등교육기관 및 산하 학술센터)로 구분된다. 사범대학에서의 한국인 대상 교원 양성, 문화교육(출판, 도서관, 박물관)도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사회과학 분야의 핵심기초연구센터로는 러시아 과학아카데미가 있다. 역사·인문학 분야에는 동양학연구소, 동양문자연구소, 모스크바 민족·민속학연구소, 상트페테르부르크 표트르대제 민속·민족박물관(MAE)(구-쿤수트카메라)이 있다. 사회과학 지부에는 극동연구소(IFES),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가 있으며,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 지부로는 노보시비르스크의 고고학·민족학 연구소,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극동 지부로는 블라디보스토크 소수민족역사·고고학·민족지학 연구소가 있다.
결론
1945년부터 현재까지 반백년의 세월이 흘렀다. 소련과 러시아에서는 그 이전 시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연구결과들이 출간됐는데 질적으로도 큰 차이를 보여준다. 한국학 전문 연구자들이 등장하면서 한국학 지도가 확장되었고 연구주제별로 연구센터들이 세워져 해외 학자들과의 창의적인 관계도 활성화됐다. 한국학 연구의 데이터베이스가 확대되어, 한국학은 종합학문으로 변모했다. 러시아 한국학자들의 노력으로 한국학은 급성장하는 동양학 가운데 하나로 부상했으며 세계 한국학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 한국학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분야는 남·북한 경제와 정치문제이다. 최근 몇십 년 동안은 러시아의 대 한국정치에 대한 관심, 특히 남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주목할 만한 연구 주제로는 남·북한 교류 및 한반도 통일전망,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열강들의 입장, 이들 열강들의 대 한반도 정책을 꼽을 수 있다. 한국사 분야(고고학, 기원학, 역사기술학 포함)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 광범위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다수의 대규모 연구들이 진행 중이다.
한편 러시아 한국학에서 성과가 미미한 분야는 문화 분야로, 과거 및 현재의 물질·정신문화에 대한 몇몇의 개별 연구만 있을 뿐이다. 앞으로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한국 문화유산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