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족 경위
연구원은 2016년부터 세미나 ‘항일독립운동과 국제사회’를 구성하여 프랑스․러시아․미국 등지의 한국사 관련 사료 현황에 대한 정보 교환을 도모하였다. 이 모임을 통해 1년 8개월 동안 13차의 세미나를 실시하여 사료 분포에 대한 윤곽을 서로 공유하는 등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국내외 자료 이해의 수준을 넘어 새로운 근·현대사 체계화를 위해서는 연구자들 간의 연구 성과의 교류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참여 연구자를 확대하여 기존 세미나를 ‘근대사 연구회’로 확대 발전시키기로 하였다.
세미나를 ‘연구회’로 확대 개편하게 된 계기는 2017년 10월 12일, 국립고궁박물관이 주최한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였다. 이 회의에 참가한 발표자, 토론자들이 본 연구원의 사업 구상에 동조하여, 기존 세미나 팀과 함께 2017년 12월 13일 오후 2시에 위 국제학술회의의 종합토론 모임에 참석한 뒤, 경복궁역 인근의 ‘에코 밥상’에서 발기회를 가졌다. 이 발기회에서의 합의에 따라 2018년 1월부터 ‘근대사 연구회 정례발표회’를 실시하였다.
○ 참여 연구자 (16명)
◦ 이태진 (한국역사연구원 원장. 기존 세미나 팀)
◦ 김연희 (문화재위원. 전 서울대학교 연구교수)
◦ 김종학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김흥수 (홍익대학교 초빙교수)
◦ 노영구 (국방대학교 교수)
◦ 도리우미 유타카 (鳥海 豊, 한국역사연구원 상임연구위원. 기존 세미나 팀)
◦ 목수현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 배민재 (서울대학교․한국산업기술대학교 강사. ‘연구회’ 간사)
◦ 서영희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기존 세미나 팀)
◦ 안창모 (경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기존 세미나 팀)
◦ 은정태 (덕성100년사편찬위원회 전임연구원)
◦ 오정섭 (한국역사연구원 사무국장. 기존 세미나 팀)
◦ 이승렬 (역사문제연구소 상임연구위원)
◦ 조윤영 (충남 도립 교향악단 소속 연주자, 음악사)
◦ 전정해 (한국역사연구원 연구위원. 기존 세미나 팀)
◦ 최덕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기존 세미나 팀)

2. 2018년 활동
1) 정례발표회
① 모임 개요
◦ 일시: 2018년 1월 31일(수)
◦ 장소: ‘최인아 책방’ 세미나실
◦ 참석자(11명): 이태진, 김연희, 김흥수, 도리우미 유타카, 배민재, 서영희, 안창모, 오정섭, 이승렬, 전정해, 최덕규
◦ 발표: 김흥수 「임오군란 이전 개화당의 조직과 활동」
② 발표 요약문
개화당은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등 30명의 비밀결사. 이 30여 명은 신복모(申福模, ?~1886)가 모집한 前營 병사 13명과 일본공사관 호위병력 150여명을 끌어들여 갑신정변을 기도. 개화당은 권력을 장악하여 부국강병을 이루고 청으로부터 독립하여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같은 나라를 꿈꾸었다. 이와 같은 구상에는 뿌리 깊은 前史가 존재. 필자는 『花房義質關係文書』를 분석하여 이러한 前史의 맥락을 규명하고자 하였음.
기존 연구에서는 임오군란을 계기로 개화파가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화파로 분화한 것으로 이해. 그러나 급진개화파로 알려진 개화당은 1878년부터 비밀조직을 결성하여 권력을 장악하려고 시도하였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 그들은 외세와의 결탁도 서슴지 않았으나 정작 외세가 이에 호응하지 않았고, 국내의 반대세력 또한 강고하였다. 임오군란 이후 개화당은 서재필 등 14명을 陸軍戶山學校에 유학 보내는 등 역량의 강화를 위해 노력. 한편, 김옥균은 300만엔 차관 교섭을 시도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함. 이에 개화당은 다시 정변을 구상하였는데, 청불전쟁의 영향으로 일본공사 다케조에가 이에 호응, 정변에 성공함. 그러나 결과적으로 3일 만에 정변이 실패함에 따라 개화세력의 성장도 실패로 돌아감. ‘국민’의 형성이 없는 근대국가의 수립은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은 1888년 박영효의 개화상소문에 드러남.
① 모임 개요
◦ 일시: 2018년 2월 28일(수)
◦ 장소: ‘최인아 책방’ 세미나실
◦ 참석자(10명): 이태진, 김종학, 김흥수, 노영구, 목수현, 배민재, 안창모, 오정섭, 전정해, 최덕규
◦ 발표: 이태진 「대한제국의 산업근대화와 중립국 승인 외교 –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 칭경 예식과 관련하여-」
② 발표 요약문
대한제국은 제국주의 열강의 국력(영토) 경쟁의 희생물이 되지 않기 위해 국제사회로부터 중립국을 인정받기를 바랐다. 대한제국 출범 후 5년째가 되는 1902년에 이를 선언할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황제의 즉위 40년 칭경예식을 서울에서 국제 행사로 개최하여 수교 각국의 특사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중립국을 승인받을 계획이었다. 불행하게도 1902년, 1903년에 코레라가 만연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이러한 기획이 있었다는 것은 대한제국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일본 정부는 러시아 외교관들이 대한제국 황제의 뜻을 수용하여 일본 외무성을 상대로 막후교섭을 벌였지만 처음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2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러일전쟁(1904. 2.)을 일으켜 그 군사력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일어난 이러한 역사에 비춰보면 대한제국의 중립국 선언 계획은 일본의 목표를 예단하면서 나라의 명운을 건 기획으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대한제국은 결코 무능하여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나라가 아니었다.
이 연구를 가능하게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일본 측에서 생산된 자료인 『주한일본공사관기록』이다. 한국정부의 요인과 황제 사이에 비밀리에 진행된 사안을 탐문하여 서울의 공사가 본국 대신에게 보낸 보고 전문 및 훈령에 근거하여 얻어진 연구 결과이다. 이 연구에서 얻어진 중요한 성과는 1901년 4월부터 추진된 일본의 이른바 제1차 英日同盟에 대한제국의 산업 근대화를 위한 외국 차관 교섭과 이와 병행한 중립국 승인 외교를 차단하는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난 점이다. 지금까지 중립국 문제는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04년 1월에 선포되는 ‘戰時 域外 중립국’ 선언에 관한 것으로, 대한제국이 출범과 함께 외국 차관 교섭 외교와 함께 영세 중립국이 되기 위한 노력이 강구된 점은 언급된 적이 없다. 외국 차관 교섭과 영세 중립국 승인 외교, 전시 국외 중립국 선포 3자의 관계를 다룬 연구는 지금까지 없었다.
① 모임 개요
◦ 일시: 2018년 4월 25일(수)
◦ 장소: ‘최인아 책방’ 세미나실
◦ 참석자(8명): 이태진, 김흥수, 목수현, 배민재, 안창모, 서영희, 오정섭, 전정해
◦ 발제: 김연희 「서양과학의 도입- 격치에서 과학으로의 전환을 위한 변주」
② 발표 요약문
쿤(Thomas Kuhn)의 패러다임의 논의에 의하면, 근대 서양과학은 동양 전통과학의 결정적 변칙사례였다. 서양과학은 단순히 자연현상을 잘 설명하는 해석체계나 자연현상을 동양전통과학보다 더 잘 보여주고 정확한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체계로서, 동양 전통 사회에 파문만을 던진 것은 아니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이 기독교 사회에서 잘 작동하던 아리스토텔레스 자연관에 큰 변칙사례로 작동했듯이 서양과학은 동양과학과 자연관으로는 대처하기 힘든 심각하고 반박하기 힘든 공격이었다. 특히 이 공격이 서양제국의 군사적 침략과 더불어 이루어졌던 만큼 동양의 전통 과학의 해체는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개항 이후 서양 근대 과학의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전통과 화해의 모색, 전통 안으로의 수용, 전통과의 병행과 같은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물리학, 천문학, 수학, 화학, 생물학과 같은 분과 형태로 들어와 수용되기 시작했기에 이들을 전통 과학 안에서 수용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어보였다. 이 분과 근대과학들은 정부가 발행한 교과서, 신문, 민간에서 발행된 잡지, 애국계몽운동단체에서 발행한 회보 및 학회지 등등에서 자주, 빈번하게 눈에 띠었고, 이를 교육하는 기관 역시 국가 체제 내에서 제도화되었다.
하지만 이런 낯선 분야를 무엇으로 종합하고 통칭할 것인가, 그리고 그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또 이런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지칭할 것인가 하는 범주화의 문제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그랬듯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서양과학의 방법론과 이론체계를 탐색하고 전통적 자연관과 화해를 시도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자연관을 재구성하려는 데에 적지 않게 노력이 있었고 많은 변주가 일어났음을 살펴보았다. 이런 시도들로 전통적 자연관에 끊임없이 균열이 일어났고 근대 과학을 전면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교두보가 마련될 수 있었다.
한편, 을사늑약 이후 강화되고 노골화된 일제의 강점 시도는 과학에 관한 또 다른 대한제국적 시각을 구성하는 강력한 배경이 되었다. 이 시기 과학은 부국강병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구국을 위한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고 조급하게 학습되었다. 이런 도구로 수용되면서 근대 과학에 는 과도한 힘이 부여되었고, 이는 대한제국의 또 다른 패배주의를 내포하게 되었다. 이는 식민강점으로 이어지는 당대의 역사적 귀결에 기인할 뿐만 아니라 강점당한 이후 일제에 의해 형성된 또 다른 혼종은 식민지배에 이념화 도구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① 모임 개요
◦ 일시: 2018년 6월 27일(수)
◦ 장소: ‘최인아 책방’ 세미나실
◦ 참석자(11명): 이태진, 김연희, 김종학, 김흥수, 도리우미 유타카, 배민재, 서영희, 오정섭, 은정태, 이승렬, 최덕규
◦ 발표: 김종학 「개화당의 기원과 비밀외교」
② 발표 요약문
『개화당의 기원과 비밀외교』는 일반적으로 ‘개화당(開化黨)’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온 비밀결사의 결성 배경과 목적, 외국인과의 비밀스런 교섭과 권력을 향한 암투를 추적하고, 그 맥락에서 갑신정변(1884)의 원인과 진행과정을 새로 조명한다. 이 책은 개화당은 처음부터 외세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정권 장악과 조선의 근본적 개혁을 도모한 혁명비밀결사 또는 역모집단이었으며, 또한 그것은 신미양요(1871)를 전후해서 오경석과 유홍기가 김옥균을 포섭하면서 처음 결성되었던 바, 그 사상적 기원 또한 의역중인(醫譯中人)의 철저한 현실비판과 과격한 사회변혁사상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방법론적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조선을 비롯한 영국·일본·중국·미국·프랑스의 미간 외교문서에 기초해서 개화당의 기원과 행적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연구로서 의미를 갖는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개화당의 근대적 언설 뒤에 감춰진 정략과 음모를 실증적으로 규명하고 정치학적 관점에서 그 의미를 해석함으로써 개화를 둘러싼 신화를 해체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의 친일문제부터 해방 이후 건국논쟁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근현대사의 아포리아(aporia)의 많은 부분이 바로 한말 개화의 문제에서 연유하며, 그 탈출의 실마리 또한 당시의 정치현실과 개화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① 모임 개요
◦ 일시: 2018년 9월 27일(목)
◦ 장소: ‘최인아 책방’ 세미나실
◦ 참석자(11명): 이태진, 이현혜, 김연희, 김흥수, 도리우미 유타카, 배민재, 서영희, 안창모, 오정섭, 조윤영, 최덕규
◦ 발표: 최덕규 「조선책략과 고종정부의 북방외교-러시아 레솝스키 함대의 극동원정 (1880-1881)을 중심으로」
② 발표 요약문
러일전쟁(1904-1905) 시기 러시아 발트함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러시아 함대의 극동 원정은 전쟁의 승패뿐만 아니라 한국정부의 대외관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1880년 러시아 해군상을 사직한 레솝스키(С.С.Лесовсий,1817-1884) 제독이 극동에 집결한 전함 23척을 직접 지휘하면서 위용을 드러낸 “레솝스키 함대”는 발트함대의 극동 원정의 원형이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레솝스키 함대의 극동원정은 러청(露淸)전쟁 대비가 본연의 목적이었지만, 고종정부의 대러 접근정책으로 구체화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러청간의 이리(伊犁)분쟁으로 촉발된 러시아 레솝스키 함대의 극동원정에 대해 살펴보고 그것이 고종의 북방외교와 어떻게 연동되는지를 고찰하였다.
① 모임 개요
◦ 일시: 2018년 11월 29일(목)
◦ 장소: ‘최인아 책방’ 세미나실
◦ 참석자(11명): 이태진, 이현혜, 김현희, 김종학, 도리우미 유타카, 목수현, 배민재, 안창모, 오정섭, 전정해, 조윤영
◦ 발표: 도리우미 유타카 「한국에서의 대한제국에 대한 연구동향과 그 고찰」
② 발표 요약문
이 발표는 대한제국에 대한 연구동향과 그것에 대한 고찰이라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대한제국에 대한 연구 동향에서는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연구들을 연대순으로 소개하고 요점을 정리했다. 대표적인 연대별 연구자는 1975년대 김용섭, 신용하, 1980년대 이구용, 이민원, 1990년~2000년대 이후 서영희, 주진오, 김재호, 이태진 등이다. 대한제국에 대한 평가를 요약하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연구자들은 근대화사업을 높이 평가하지만,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연구자들은 ‘왕권강화나 전제군주적인 권력집중은 민주화해야 되는 시대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인 움직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왕권강화나 전제군주적인 권력집중에 대해서는 필자의 고찰이 있다. 중국의 무술변법을 주도한 양계초(梁啓超)나 강유위(康有爲)의 민주화와 통일국가에 대한 생각은, 중세적인 국가가 근대적인 국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근대적인 수준에서의 통일국가, 근대적인 강력한 중앙집권국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청나라도 근대적인 강력한 중앙집권이 아니었기 때문에, 양계초나 강유위도 민주화의 중요함을 알면서도 우선순위로서는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무술변법을 추진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 일본의 메이지 유신도 헌법을 결정하고 의회를 만들기 전에는 민주화는 일체 하지 않고 중앙집권을 강화해서 근대화를 추진했다. 일본도 중국도 근대화하기 전에는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서양의 절대왕정과 비슷한 시기가 필요했던 것을 지적했다. 따라서 필자는 대한제국의 왕권강화나 전제군주체제는 근대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다고 생각하고 대한제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2) 국외연구자 초청 세미나
(1) 제1회
① 모임 개요
◦ 일시: 2018년 8월 28일(화)
◦ 장소: ‘최인아 책방’ 세미나실
◦ 참석자(9명): 이태진, 김흥수, 도리우미 유타카, 목수현, 배민재, 서영희, 오정섭, 최덕규, 서상문
◦ 발표: 이화자(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중국근대사 연구 현황」
(2) 제2회
① 모임 개요
◦ 일시: 2018년 11월 6일(화)
◦ 장소: ‘최인아 책방’ 세미나실
◦ 참석자(7명): 이태진, 김흥수, 도리우미 유타카, 배민재, 오정섭, 전정해, 최덕규
◦ 발표: 벨라 바리소브나 박(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동양학연구소)
「최근 러시아에서의 한국학 연구동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