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연구원 소식지 2호

1. 사업의 취지 및 목표

 1)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항일독립운동사의 자료 발굴 및 체계화

  이 사업은 대한제국이 만국평화회의 특사 파견, 1919년 상해임시정부의 파리 대표부 및 구미 대표부 설립 등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주권 수호 및 회복 운동과 관련된 해외 자료의 조사 발굴, 수집 및 정리, 체계화를 목표로 한다.

 2) 국제평화운동의 관점에서 20세기 전반 한국 근현대사 재조명

  카네기 국제평화기금 재단 창설(1900), 노벨평화상 제정 시행 (1901), 국제연맹(1920) ‧ 국제연합(1945)의 창설로 이어지는 20세기 전반 국제평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국제평화운동 진영을 상대로 한 주권회복운동의 실상과 성과, 이에 대한 일제의 방해, 저지 공작을 보여주는 자료의 발굴과 체계화 및 이에 대한 연구를 목표로 한다.

 3) 한국 근현대사의 새로운 체계화 필요성

  한국 역사학계는 지금까지 제국주의(일본)에 대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양 진영에 대한 평가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맥락을 잡아왔으며, 이는 대척적 편향성이 강한 역사인식을 낳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주권회복 운동, 이에 대한 구미 지식인 및 관련 기관들의 반응 등을 추적하여 새로이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항일독립운동의 역사에 대한 평가는 냉전시대를 넘어 21세기에 국제화 추세가 현저해진 조건에서는 대한민국의 국제적 입지를 넓혀가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역사 연구 과제이자 인식이다. 

  위와 같은 취지와 목표 달성을 위해 연구원에서는 상임연구원 (오정섭, 도리우미 유타카) 외에 연구위원을 위촉하였다. 연구위원은 연구사업의 개발 및 정리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해외 수집 자료의 선정, 선정 자료의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다. 또한 이들 연구위원들을 중심으로 이태진 원장의 주관 아래 ‘항일독립운동과 국제사회’ 세미나를 운영 중에 있다. 특히 2017년부터는 연구위원들의 참여의식과 발표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소정의 참가비와 발표비를 지급하고 있다. 

 ○ 세미나 참가자

  • 이태진(한국역사연구원 원장)

  • 최덕규(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러시아어 자료 담당)

  • 서영희(한국산업기술대, 연구위원)

  • 전정해(전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위원-프랑스어 자료 담당)

  • 박준형(서울시립대, 연구위원)

  • 홍문기(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도리우미 유타카(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상임연구원)

  • 오정섭(한국역사연구원 사무국장, 상임연구원)

2. 2017년 상반기 세미나 활동

 (1) 제7차 모임

    모임 개요

    ◦ 일시: 2017년 1월 13일

    ◦ 장소: 연구원 사무실(은석 빌딩 305)

    ◦ 참석자: 이태진, 도리우미 유타카, 박준형, 서영희, 전정해, 최덕규, 오정섭

    ◦ 발제: 최덕규 「러시아 소재 한국사관련 자료」

   「러시아 소재 한국사관련 자료」 요약문

  1. 러시아의 문서관리 현황

소비에트 연방이 와해된 이후 ’20세기 최대의 문서고’로 불리는 러시아의 기록관들이 개방됨에 따라 러시아소재 한국사관련 자료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생산된 기록물들은 정부 산하의 약 2,600개에 달하는 기록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 기록관들은 3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그룹은 러시아연방 각료위원회 산하의 기록 관리청(Росархив) 소속의 8개 기록관들로서 러시아연방기록관(ГАРФ)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 그룹은 러시아 연방 대통령기록관을 중심으로 대통령 및 주요 연방행정기관 산하의 9개 기록관들이 해당된다. 세 번째 그룹에는 모스크바 및 지역기록관 산하의 개별 지방 문서보관소들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1) 모스크바 중앙 역사문서관, 2) 쌍뜨-뻬쩨르부르그 및 여타 지방의 기록관들을 포함하고 있다.

 2. 국내기관 수집자료

러시아에서 수집되어 국내로 이전된 한국사 관련 자료들은 시기와 주제별로 4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19세기 말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둘러싼 열강들의 정책과 정세에 대한 외교관 및 함대사령관들의 보고, 둘째, 1863년 이후 조선인들의 러시아 연해주로의 이주 및 스탈린 집권 시기 고려인 강제이주 관련 기록, 러일전쟁 이후 노령지역 의병과 무장투쟁 기록, 셋째, 일본강점 시기 민족해방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관련 코민테른 자료, 넷째, 해방 이후 소련군의 북한정권 수립 관련 자료 및 한국전쟁과 북한현대사 자료 등이 이에 해당된다.

 3.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관련 필름 건

  러시아영화사진기록관(РГАКФД) 홈페이지에는 부관장 모이세예바(Р.М.Моисеева)가 2011년 한러대화 학술회의(2011.10.30-11.2)에서 발제한 “러시아국립영화사진기록관-시청각역사 보존소, 그 가운데 한국사 관련 기록”이 게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한국에서 관심이 많은 안중근의사의 하얼빈 의거 관련 필름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이 필름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비슈넵스키(В.Вишневский)가 집필한『러시아 혁명 이전의 기록영화, 1907-1916』에서 영화번호 420번 “이토공(公)의 하얼빈 역에서의 피살과 일본에서의 장례”의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제작자는 코브쵸프(П.В.Кобцов)이며 1909년 10월 13(26)일에 찍은 이 영화는 러시아의 바쿠(1909.12.22)와 카잔(1910.01.06)에서 상영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코브쵸프는 의거현장과 유해송환을 카메라에 담은 유일한 영화제작자이며 그가 찍은 영상의 일부는 파테(Pathe) 형제가 제작한 영화 “이토공의 장례”에 활용되었다. 그러나 모이세예바 부관장은 러시아영화사진기록관에는 이 영상들이 소장되어 있지 않다고 언급한 뒤, 이 필름을 찾으려 구소련의 여러 지역과 해외에도 수소문하였으며 이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논의 내용

   ◦ 19세기 유럽에서의 자유주의 경제체제 등장과 평화운동의 흐름, 그 가운데 러시아의 역할에 대해 논의.

   ◦ 러시아가 평화운동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윌리암 스테드, 마르텐스 등의 역할을 자료를 통해 검토할 필요성 공감.

   ◦ 19세기 유럽 평화운동의 흐름과 한국독립운동의 관계.

 (2) 제8차 모임

   모임 개요

    ◦ 일시: 2017년 3월 10일

    ◦ 장소: 도산공원의 안창호 묘역 및 도산안창호기념관

    ◦ 주제: 해당 지역 답사 및 도산 안창호 선생 79주기 추모 참배

    ◦ 참석자: 이태진, 도리우미 유타카, 서영희, 전정해, 최덕규, 오정섭

   답사 내용

    ○ 도산안창호기념관 전시실 관람

      ◦ 안창호의 생애와 신민회, 대한인국민회, 임시정부, 동우회, 흥사단에서의 활동을 보여주는 각종 사진과 유물 관람.

      ◦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안창호의 역할과 역사적 위치에 대한 참가자들의 의견 교환.

    ○ 도산 안창호 79주기 추모 참배

      ◦ 안창호 서거 79주기를 맞아 묘소에 헌화하고 참배

(3) 제9차 모임

   모임 개요

    ◦ 일시: 2017년 4월 14일

    ◦ 장소: 연구원 사무실(은석 빌딩)

    ◦ 참석자: 이태진, 도리우미 유타카, 서영희, 전정해, 최덕규, 오정섭

    ◦ 발제: 이태진 「조선, 대한제국 수교 조약 원본 찾기 현황」

   「조선, 대한제국의 수교 조약 원본 찾기 현황」 요약문[1]

조선왕조 26대 왕 고종은 아버지 대원군과는 달리 서양의 기계문명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개방적 대외정책을 폈다. 그래서 1876년 2월 일본과의 수호조규를 체결한 후, 1882년부터 서양의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과 잇따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1897년 10월 대한제국을 출범시킨 뒤에도 1898년 청나라와 대등한 독립국으로 조약을 체결하고, 1901년 1902년에는 유럽의 중립국인 벨기에, 덴마크와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일본제국은 1904년 2월 러시아와 전쟁을 일으키고 그 군사력을 배경으로 대한제국의 주권을 빼앗기 시작하여 1905년 11월 보호조약을 강제하였다. 이때 일본의 한국 통감부는 대한제국 황제(광무제 고종)에게 외국과 체결한 조약 원본을 넘겨주기를 요구하였지만 황제는 이를 심복 조남승趙南昇을 시켜 은익하게 하였다. 그러나 프랑스 신부 뮈텔 주교에게 맡긴 것이 탄로되어 모두 압수당하였다. 1910년 6월 3대 통감 데라우찌 마사다케寺內正毅가 본국 외무대신에게 보낸 보고 문건에 따르면 조약 원본 및 비준서를 포함하여 황제가 외국회사와 체결한 사업 계약서, 밀지 등 총 156점에 달하였다. 그런데 이 압수 문건들은 공공기관에 보존되지 않고 산실되어 사실상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본인은 조약 체결 상대국이 보관하고 있는 원본을 확인, 열람하는 조사 작업을 하던 중, 산실된 조선, 대한제국 측 보관본의 일부가 몇 곳에 잔존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이 연구는 이 잔존본이나 상대국 보관본을 촬영하여 조선, 대한제국이 체결한 모든 수교 조약을 한 자리에 모아 책으로 출판하는 계획아래 수행되고 있다. 수호통상조약은 독립 주권 국가의 중요한 징표이므로 이를 한자리에 모으는 것은 일본에 의해 강제로 당한 보호국화, 병합의 불법성을 밝히는 자료로 기능할 것이 기대된다. 2017년 4월 14일 세미나에서 그간에 있었던 원본 확인 외국 수장기관 방문, 대한제국 측 보관본이 일본 도쿄東京 고서점에 나와 매입 후의 현황, 국립중앙도서관이 1946년에 5종을 매입 수장한 사실 확인 등을 보고하였다.

조미조약에 대한 아서 미국 대통령의 비준서
조미조약 조선 비준서 
미국 국립문서관에서 입수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대한 조선 군주 고종의 비준서. 
프랑스 파리의 라 쿠르뇌브 (La Courneuve) 외교문서 보관소) 소장의
「조불수호통상조약」의 조선문 원본(푸른색)과 군주 비준서(붉은 색), 프랑스 측 문서 1건(흰색).
조선 측 문건은 태극기의 청홍색으로 맞춘 것이 인상적이다.

  논의 내용

  ◦ 조약 원본 같은 연구 기초자료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 의견 일치. 수집이 필요한 기초자료에 대해서 논의.

  ◦ 고종황제가 은닉시켰다가 총독부에 압수당한 문서들의 목록 검토. 문서들이 지닌 역사적 의미, 문서들을 은닉시킨 고종황제의 의도에 대해서 논의

  ◦ 대한제국기 역사에 대한 기존 연구의 문제점 논의

 (4) 제10차 모임

    모임 개요

    ◦ 일시: 2017년 5월 19일

    ◦ 장소: 연구원 사무실(은석빌딩)

    ◦ 참석자: 이태진, 도리우미 유타카, 전정해, 오정섭

    ◦ 발제: 도리우미 유타카 「일본의 평화주의자 이시바시 탄잔石橋湛山」

    ◦ 자료소개: 이태진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발견자료」 

   「일본의 평화주의자 이시바시 탄잔石橋湛山」 요약문

   한국 독립운동과 관련이 있는 이 세미나에서, 이시바시 탄잔을 선택한 것은, 이시바시 탄잔이 한국 독립운동의 목표에 가까이 가있는 유일한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독립하기 위해서는, 전쟁으로 이겨서 독립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인을 설득할 수밖에 없다. 독립운동은 식민지를 독립시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일본의 이익이 된다는 것을 설득하는 것이다. 이시바시 탄잔은 처음부터, 식민지지배를 포기해서 조선을 독립시키는 것이 일본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1920년대부터 주장해온 저널리스트이었다는 점에서 귀중한 인물다. 이시바시 탄잔은 1884년에 태어나 와세다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양경제신보사에 입사하고 나서, 동양경제신보에 많은 사설을 쓰고, 일본이 가야 할 길을 계속 주장했다. 대표적인 사설은 다음과 같다.

  「우리에게 이민의 필요 없다」(1913년) : 일본의 인구과잉으로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일본인이 많지만, 공업제품 등을 수출해서 식량을 수입하면 인구과잉도 해결할 수 있다.

  「인종적 차별 철폐요구 전에」(1919년): 일본이 파리 강화회의에서 인종차별 철폐를 요구하지만, 일본이 외국인을 차별하고 있다. 요구하기 전에 일본이 먼저 인종차별을 철폐해야 한다.

  「조선인 폭동에 대한 이해」(1919년): 조선인의 폭동은 여건이 생기면 계속 일어날 것이며, 폭동이 일어나면 희생이 따를 것이다. 희생을 없애기 위해서는 조선을 독립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일본주의의 환상」(1921년): 조선, 대만 등을 포기해도 경제적인 이익은 무역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잃어버리는 경제적인 이익은 그다지 크지 않고, 오히려 얻는 경제적 이익이 크다. 큰 영토를 확보하려고 하기에 군사적인 위험도 많아진다.

  「갱생일본의 출발 앞날은 실로 양양하다」(1945년): 우리나라는 해외영토 모두를 잃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산업을 일으켜서 무역해가면 자연스럽게 일본은 발전하게 될 것이다.

   논의 내용

    ◦ 일본에서 보기 드문 평화주의인 이시바시 탄잔의 사상적, 학문적 계보, 특히 침략 없이도 해양무역을 통해서 일본이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입장의 카스카슈勝海舟 계열과의 관련성 논의. 당시 국제평화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 있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 일치.

    ◦ 태평양전쟁 패전 후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평가

    ◦ 일본의 이민정책과 식민지팽창정책과의 연관성에 대한 논의

    ◦ 대일본주의 식민지팽창정책에 맞서서 소 일본주의를 주장한 이사비시 단잔에 대한 사상적, 정치적 평가

  자료소개: 이태진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발견자료」 – 한국재외문화재단 제공

    ◦ 2016년 4월 29일,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보수 및 복원공사 중 공사관 집무실 벽난로 속에서 발견된 자료에 대한 소개.

    ◦ 전시 초대장(1894. 4. 26.), 엘리스 루즈벨트 결혼식 초대장, 크리스마스 카드 및 연하장, 덴빌 군사학교Danville Military Institute 엽서, 명함, 영일 사전 등 11건 15점의 자료의 개요에 대해 소개하고, 각 자료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 상호 의견 교환.


[1] 관련논문: 이태진, 「조선 대한제국 조약문 원본들과 중요 근대화 사업 계약문서들의 행방」, 󰡔한국문화󰡕 3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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