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프랑스 문서관 현황
프랑스는 국립문서관(중앙문서관 3곳-Paris, Fontainebleau, Pierrefitte-sur-Seine)과 100여 곳의 지방문서관 및 각 부처별로 문서관을 설치하고, 문서를 보관ㆍ정리하여 열람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국립문서관은 국가행정문서, 국유재산 관련 문서 등을 소장하고 있다. 부처별 문서관으로는 외무부ㆍ국방부(육군부ㆍ해군부)ㆍ재정경제부 등의 문서관(혹은 역사자료실)이 있다. 국방부 문서관에는 극동함대의 활동 및 병인양요 관련 자료는 해군부에, 일본ㆍ중국주재 프랑스 무관의 보고 내용 등은 육군부에 보관되어 있다. 해외부(Minisère d’outre-mer)의 문서관은 식민지 운영 관련 문서를 소장하고 있으며 남부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에 있다. 프랑스와 한국의 국교수립(1886년) 전후 시기부터 한국의 정치ㆍ경제ㆍ문화 등 전반적인 내용의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프랑스 대외정책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외무부문서관이다.
문서관 외에도, 파리 프랑스국립도서관은 필사본부(筆寫本部)와 지도 도면부에 많은 고서들 및 16세기 이래 지구의, 세계지도, 아시아 지도 등 수천 점을 소장하고 있다. 동양 필사본부에 병인양요 시 프랑스군들이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해간 의궤류 등이 보관되었다가, 현재는 대여방식으로 반환되어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주한 프랑스 공사를 지냈던 플랑시(1853~1922: 서울 재임 기간 1888. 6∼1891. 6, 1896. 4∼1906. 1)가 그의 한국 재임기간에 수집해 간 고서들 가운데 경매 시 매입한 서적 및 지도들도 있다. 그 외 플랑시가 소장했던 한국 고서들의 대부분은 파리소재 국립동양어문화학교(INALCO)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2. 프랑스 외무부 문서관
프랑스 외무부 문서관의 소장 자료들은 프랑스 혁명 이전 구체제부터 오늘날까지 프랑스 외무부 업무 수행 중 만들어진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치인이나 외교관의 기증문서들도 포함하고 있다. 이 자료들은 그 출처에 따라 라 쿠르뇌브(La Courneuve, 파리 근교)와 낭트(Nantes, 파리 서남쪽 394킬로미터) 두 곳에 나뉘어 있으며, 조약문, 이미지(사진ㆍ판화ㆍ포스터 등), 지도 등을 포함하고 있다.
프랑스 외무부 문서관 소장 문서들은 문서군(Série) → 문서철(Sous-série) → 문서함(Carton) → 문서책(volume) 등으로 나뉘며, 문서군에 따라 단계가 생략되기도 한다. 문서군은 정치ㆍ통상[Correspondance Politique(기원∼1896), Correspondance Politique et Commerciale(“Nouvelle série”라고도 부름, 1896∼1918), Correspondance consulaire et commerciale(1793∼1901), Affaires Diveres Politiques 등], 통상ㆍ재정[Affaires diverses Commerciales, Affaires Economiques et Financières], 국제연합[Nations Unies], 파견자 문서[Papiers d’Agents-Archives Privés], 의전[Protocole] 등 주제별군과 유럽[Europe], 미국[Amérique], 아시아-오세아니아[Asie-Océanie] 등의 지역군으로 약 60여 종의 문서군으로 분류되어 있다.
위의 문서군들 가운데 한국관련 자료들은 약 20여 종의 정치ㆍ통상 및 통상ㆍ재정 등의 주제군 및 지역군인 아시아-오세아니아군에 들어있다. 또한 한국 관련 자료들은 각 주제의 문서군 내 아시아ㆍ한국ㆍ중국ㆍ일본 등의 문서철에 있으며, 시기적으로는 개항을 전후한 시기, 대한제국 시기 및 일제강점 초기, 일제강점기 등으로 나뉘어 있다.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1960년대까지의 자료들은 아시아-오세아니아 문서군 내 한국, 남한ㆍ북한 문서철로 나뉘어 있다. 따라서 한국관련 자료들은 시기와 내용에 따라 ‘아시아’ ‘중국’ ‘일본’ ‘인도차이나’ ‘한국’ ‘남한’ ‘북한’ 등으로 다양하게 나뉘어, 주제별이나 연대별로 묶인 자료들 속에 들어있다.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 전후부터 1940년대까지 주한 프랑스 공관(서울)에서 작성되었던 문서들은 대부분이 라 쿠르뇌브(La Courneuve, 파리근교)에 보관되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라 쿠르뇌브 소장 자료를 다수 수집하였고, 그 중 일부가 『한국근대사자료집성』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으로 간행되었다.
3. 프랑스 외무부 낭트 문서관 자료 조사 의의
프랑스 외무부 낭트(Nantes) 문서관은 1987년 설치되어, 해외주재 프랑스 공사관(대사관) 및 총영사관 문화원 등의 문서들을 보관하고 있다. 낭트 문서관의 자료들은 공사관 총영사관 등을 설치하였던 장소(도시명)가 문서군 역할을 한다.
프랑스는 1886년 한국(조선)과 수교 후 서울에 공관을 설치하였는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서울에 주재했던 프랑스 공관의 자료들 대부분이 1940년대까지는 라 쿠르뇌브에 보관되어 있다. 낭트에는 ‘서울(대사관)’로 1892년부터 1940년까지 4상자분량, 그리고 1950년 이후 자료들이 있다. 또한 1961년 이후 문화원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다.
1910년 8월 대한제국이 국권을 상실한 후,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上海) 프랑스 조계 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까지 상하이에 머물렀으며, 이후 항저우(杭州, 1932), 전장(鎭江, 1935), 창사(長沙, 1937), 광둥(廣東, 1938), 류저우(柳州, 1938), 치장(綦江, 1939), 충칭(重慶, 1940) 등지를 차례로 이동하며 독립운동을 하였다. 중국 내 외국 조계지는 중국의 공권력보다도 조계 설치국의 공권력이 우선적으로 행사되는 곳으로,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 내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프랑스 경찰의 관할권 아래에 있었다. 일본 총영사관이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려면 프랑스 총영사관의 동의를 받아야만 했다.
1919년 4월 상하이주재 일본 총영사는 상하이주재 프랑스 총영사관으로 프랑스 조계 내 한국인들의 체포를 요청했다. 이에 상하이 프랑스 총영사관 직무대리는 일본 총영사가 제시한 일부 한국인의 체포 영장에 서명을 해주면서, 한편으로는 체포영장상의 한국인들에게 피신할 것을 미리 알려주었으나 결국 한인 2명이 체포되고 말았다. 보통범인 경우, 재판을 거쳐 풀려난 중국인의 예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인들을 체포한 일본 총영사관에서는 그들을 재판도 거치지 않고 한국으로 호송해버렸다. 상하이 프랑스 총영사관 직무대리는 그해 5월 15일자 베이징(北京, Peking)공사관으로 보낸 보고에서, 체포한 한국인들을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은 일본 총영사관의 처사가 차후 한국인 체포를 요청하는 일본의 영장 허가 요청을 일체 거절할 수 있는 구실이 될 것이라 하였다. 이어 5월 21일자로 주베이징 프랑스 공사관에서는 상하이 프랑스 총영사관으로 보낸 공문에서, 안남(베트남) 혁명가들의 술책을 탄압하는데 있어 일본 정부가 효율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일본의 영장 요청에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것을 일본 공사에게 주지시켰다며, 지난번과 같은 영장 집행에 더 이상 협조하지 않도록 맡긴다고 하였다.
위의 예에서 보이듯이, 일본은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 베트남 독립운동가들을 일본에 거주케 하고 그들의 정보를 프랑스에 제공하겠다며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체포 허가를 요청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행태는 일제강점기 내내 계속되었다. 따라서 프랑스의 식민지 운영과도 관련되어 중국내 프랑스 조계에서 한국인들의 활동은 프랑스 총영사관(영사관) 등의 주시 대상이 되었고, 실제로 총영사관에서 베이징공사관으로, 베이징공사관에서 프랑스 외무부로 보고되었다.
상하이 주재 프랑스 총영사관 문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1980년대 말 이미 주목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30년대~1940년대 초 문서가 일부 입수되어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20 임정편Ⅴ(1991), 자료 21 임정편Ⅵ(1992)으로 간행되었으며, 1919년부터 1940년대까지의 문서 일부가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23(2008), 24(2009)로 간행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베이징주재 프랑스 공사관의 1930년대 초 일부 문서를 수집하여 프랑스소재 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 1 (2006)로 간행하였다.
이와 같이 일부 문서가 수집되어 간행되었으나, 우리 독립운동가들과 동포들의 활동을 드러내기엔 미약한 분량이다. 이들 자료들은 주로 목록상 한국인의 활동이 드러난 자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주재 프랑스 각 공관들의 자료 목록 작성은 주로 중국연구자들에 의해 작성되었으므로 우리 한인 동포들의 활동에 대한 것은 방대한 자료 속에 묻혀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 동포들은 일제강점기 조국을 떠나 중국 곳곳에 거주하며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였다. 때문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장기간 소재했던 중국주재 프랑스 상하이총영사관과 베이징공사관(후에 대사관으로 승격) 등의 문서들은 미완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 및 우리 동포들의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우리에게 알려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제강점기 상하이(上海)와 베이징(北京)뿐만 아니라 난징(南京), 텐진(天津) 등 중국내 우리 한인들의 주요 활동지역 주재 프랑스 공관의 보고 문서들에 대한 폭넓은 조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