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연구원 소식지 3호

1911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1911년에 프랑스 기업가가 하얼빈의거 현장을 촬영한 필름을 하얼빈에서 입수하여 프랑스로 가져가서 장기간 방영하였다고 한다(이태진 원장 자료 제공으로 󰡔조선일보󰡕 보도). 이 기사를 근거로 연구위원인 안종웅 박사의 협력 아래 파리의 필름 보관 기관을 중심으로 필름의 소재를 조사한 사업이다.

이태진 원장은 2016년 2월 UAI(국제학술원 연맹) 상임위원회 회의 참석차 파리에 갔을 당시, 수장 가능성이 있는 프랑스 4개 영상자료 기관을 파리 거주 연구위원인 안종웅 박사와 함께 이미 방문하여, 담당 큐레이터를 면담하고 관련 정보를 전달한 바 있다.

2017년에 2월 이태진 원장은 UAI 상임위원회 참석을 위해 다시 파리를 방문하여 연구위원 안종웅 박사 협력 하에 수장 가능성이 있는 프랑스 파리 소재 (1) ‘INA (Institut national de l’audiovisuel (2) Audio Visual Bibliotheque Nationale (3) Center Nationale Cinema 등 세 기관의 당직 큐레이터들을 만나 관련 자료를 제공하여 소장 목록을 검색해 주기를 바라는 조사활동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유관 필름의 존재는 목록에서 확인하였으나, 현지 자료 보관상의 혼선으로 현재의 소장 위치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항일독립운동과 국제사회’ 세미나 및 이태진 원장의 개인적인 노력으로 하얼빈 의거 현장 필름의 일부와 이토 히로부미 公爵의 국장 촬영 필름을 함께 편집한 프랑스의 저명 영화사(Pathé frères, 파테 형제)가 1909년에 제작한 “Les Funérailles du Prince Ito(이토 공작의 장례)”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를 수장한 기관을 추적 중이다.

1. 자료 조사, 수집의 취지

하얼빈의거 후 재판과정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는 신분을 여러 차례 밝힌 안중근은 의병투쟁사 ․ 항일무장투쟁사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또한 그가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은 한ㆍ중ㆍ일이 대등하게 참여하는 동북아평화회의체라는 구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서는 사상가로서의 그의 면모가 최근 학계의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안중근 관련 자료의 수집, 정리는 한국독립운동사, 근대사상사 연구를 위한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하얼빈의거 후의 안중근 재판기록은 의거의 정당성, 재판의 정당성 여부에 관한 연구, 하얼빈의거의 전모를 밝히는 연구 측면에서도 중요한 자료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현재 알려져 있는 안중근 재판기록은 전체 기록의 1/3 정도에 불과하다.[이태진, 「旅順 高等法院의 ‘安重根 관계 자료’에 관한 田川孝三의 復命書」, 󰡔역사의 창󰡕, 국사편찬위원회, 2012년 상반기 통권34호, 2012. 8). 따라서 전체 재판기록의 탐사, 수집은 항일독립운동사 연구의 가장 시급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2. 진행 현황

이태진 원장의 그 동안의 조사 결과, 뤼순旅順 법원ㆍ뤼순 당안관檔案館, 다롄大連 중급재판소ㆍ다롄 관동법원ㆍ다롄 당안관 도서관 등이 안중근 재판기록 소장 가능성이 높은 기관으로 파악되었다. 이에 현재 다롄, 뤼순에 거주하면서 본 조사 사업에 협력하고 있는 장욱도張旭濤 변호사(중국인), 김월배 교수(뤼순 외국어대) 등이 2017년 초부터 수차례에 걸쳐 다롄 중급재판소의 문서 편찬사업 담당자들과 접촉하였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재판기록 원본에 대한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위 두 조사자들은 2017년 11월 서울을 내방하여 이태진 원장과 회동, 다롄 시의 중국인민법원에서 출간한 󰡔俄日殖民時期 ‘關東州’ 司法審判硏究󰡕를 전하면서 위와 같은 문서 공개가 제한된 실태를 전하였다. 이 책에는 이 재판소의 소장 자료를 다수 제시하였지만 재판 기록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재판기록에 대한 정리에는 아직 근접하지 못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업은 국제성이 있는 중요 역사 자료를 원본 사진, 해설 논문, 필요한 외국어 번역문 등과 함께 담아 국제적 연구 자료가 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2017년부터 시작하는 자료 발간 사업이다. 2017년에는 제1집으로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중국 명대 초기의 간행물인 󰡔영락대전(永樂大典)󰡕 1책(권 8782, 8783)의 등사본을 간행하기로 결정하고 작업을 진행하여, 2018년 2월에 󰡔韓國에 전하는 永樂大典 – 傳存 경위와 내용󰡕이라는 이름으로 간행을 마쳤다.

간행본은 ① 해당 󰡔영락대전(永樂大典)󰡕 1책의 원본 사진 ② 해당 책의 해제격인 󰡔영락대전 잔궐본(殘闕本)에 대하여󰡕 (1914년 작성, 일본어본,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③ 이 책을 포함한 ‘당판도서(唐版圖書)’를 1910년 10월 ~ 1914년에 이왕직 도서실의 예산으로 매입한 경위, 보관상태 및 문헌적 가치 등을 자세하게 살핀 이태진 원장의 논문(한국어본, 중국어 번역본) ④ 이왕직 이름으로 구입한 󰡔영락대전󰡕 등 당판도서 860종의 현존 상태 및 주요 서적에 대한 해제(한국어본, 중국어 번역본) 등으로 구성되었다.

영락대전은 우리나라의 보물급에 해당하는 현 중국 국가급 문물 2등급의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서울대 소장본 1책은 비록 등사본이지만 등사의 원본이 행방불명이 된 현재로서는 내용상 유일본으로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따라서 이의 출간에 대해서 중국 학계도 상당한 관심을 가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간행사

 

. 해설

󰡔永樂大典󰡕, 어떤 책인가? / 李泰鎭

‘李王職’ 소장의 󰡔永樂大典󰡕 1책 매입 경위 추적 - 朝鮮總督府의 中國 古文獻 대량 매입의 의도 - / 李泰鎭

「永樂大典殘闕本ニ就テ(永樂大典殘闕本에 대하여)」 [日文]

/ 朝鮮總督府 李王職圖書室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永樂大典󰡕 현존본 일람표 (잔존 권수와 소장기관)


. 원본 (사진)

󰡔永樂大典󰡕 卷8782, 8783 [謄寫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卷之八千七百八十二 十九庚 - 僧 襍錄諸僧四 (56면)

卷之八千七百八十三 十九庚 - 僧 襍錄諸僧五 (48면)


. 󰡔唐版財産目錄󰡕 일람표 및 수록 도서 해제

‘李王職’의 「唐板財産目錄」 일람표 – 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왕실도서 藏書閣의 소장 현황 조사 / 金信會 작성

󰡔唐版財産目錄󰡕 도서들의 해제 / 柳鍾守


. 中文翻译部

出版寄语

󰡔永樂大典󰡕是什么样的书?󰡕 / 李泰镇(崔桂花 译)

‘李王职’所藏《永乐大典》一册购入过程追踪-朝鲜总督府大量购买中国古文献之意图 - / 李泰镇(崔桂花 译)

<唐版财产目录>主要图书题解 / 柳钟守(崔桂花 译)

『永樂大典』은 중국 명나라 초기 永樂帝 成祖(재위 1402-1424) 때 편찬된 문헌 백과사전이다. 대영백과사전이 이 책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백과사전이라고 평가하였다. 본문 22,877권, 목록 60권을 1책 당 2권으로 묶어 10,095책, 글자 수가 약 3억 7천만에 달하였다고 한다. 필사본으로 당초 1질이던 것을 嘉靖帝 世宗(1506-1566) 이 화재로 인한 소실을 우려하여 1질을 더 필사하여 만들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큰 거질이 현재 겨우 800여 책만 전하고 있다. 청나라의 국운이 기울어 내우외환이 거듭하던 중에 그 많은 책들이 흩어지고 없어져 버렸다. 중국 국내에 남은 것들은 ‘국가 급 문물 2등’으로 지정되어 소중하게 보존되고 있다. 이렇게 귀중한 책 하나가 서울에 남아 있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의 도서 중에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 때 수집된 책들을 구간도서(舊刊圖書)라고 부르는데 그 중에 포함되어 있다. 편찬자는 1990년 대 초반에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였지만 소장 경위를 확인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 책에 실린 해설 논문의 내용을 요약하여 간행사로 대신한다.

이 책은 1914년 11월 조선총독부 산하의 李王職圖書室이 일본 京都帝國大學의 內藤湖南의 추천으로 매입한 것이다. 당시 이왕직도서실의 일본인 관계자들은 이 기관의 예산으로 중국 고서인 이른바 唐板圖書를 대량으로 매입하고 있었다. 이 『永樂大典』을 산값은 200圓으로 다른 매입가에 비해 격단의 차이가 있다. 권 8782, 8783 두 권이 한 책으로 묶어진 것이다. 1986년 北京 中華書局에서 간행된 張忱石의『永樂大典史話』에 위 권수를 밝힌 1책의 소재지를 “南朝鮮 舊京 李王職 文庫”라고 명기하였다. 중국의 서지학자들은 이 책이 서울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편찬자는 2010년 9월 말에 국사편찬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이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中樞院 및 朝鮮史編修會의 작업 자료들을 서고에서 접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그 수장고의 한 서가에서 우연히 뽑아 든 책자에 「永樂大典 殘闕本에 대하여(永樂大典 殘闕本に就いて)」(4B6B 44)란 제목이 붙어 있었다. 거기에 이 책의 매입 경위가 자세히 밝혀져 있었다. 매입 당초에 ‘僞物’(僞作)이란 말이 있었지만 관계자들이 검토 끝에 가정제 때 필사된 진본이란 판정을 내린 내용이었다. 이왕직도서실로 하여금 이 책을 사도록 추천한 사람이 경도제국대학의 저명한 역사학자 內藤湖南란 것도 밝혀져 있었다.

조선총독부 산하의 이왕직 도서실의 책들은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왕실도서관’ 藏書閣에 보관되어 있다. 그래서 위 논문을 읽은 뒤에 급히 이쪽의 정보를 뒤져 이왕직도서실의 도서 구입 장부인 「唐版財産目錄」에서 1914년에 『永樂大典』 1책을 매입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다. 1910년 10월부터 1914년 11월까지 唐板圖書 680여 종(2만여 책) 가운데 포함되어 매입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뒤이어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이 보관하고 있는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의 ‘圖書原簿’를 통해 1935년에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이 이 책을 이왕직도서실로부터 빌려 ‘謄寫’를 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서원부’에 따르면 1935년(昭和 10년) 3월 22일 ‘謄寫’ 작업에 대한 결제가 이루어지고 6월 11일에 등사가 이루어 진 것을 ‘製本’하여 도서로서 ‘생산’되어 비치하게 되었다. 한편 이 ‘등사본’의 뒤표지 안쪽에는 “昭和 10년 2월 李王職 소장 寫本으로부터 謄寫함”이란 기록이 있었다. 종합하면 1935년 2월에 이왕직으로부터 원본인 필사본을 빌려서 3월 22일에 ‘등사’를 마친 뒤 6월 11일에 제본을 완료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조사가 완료된 순간에 ‘등사’의 대상이었던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절차상, 경성제대 부속도서관은 등사를 마친 뒤 원본을 이왕직도서실로 반납했겠지만,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 도서에서 이 책은 소장되어 있지 않다. 경성제대 부속도서관이 이를 반납하는 과정에서 실종되었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결국 현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등사본’은 현재로서는 내용상 유일본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을 영인본으로 출간하는 뜻도 여기에 있다.

영인본 『永樂大典』 卷之八千七百八十二, (卷之八千七百八十三) 1책은 비록 1935년에 생산된 등사본이라고 할지라도 학술적으로는 현 중국의 ‘국가급 문물 2등’에 준하는 귀중분이다. 내용은 ‘僧’자 韻에 해당하는 명나라 이전의 불교 서적들의 기록들을 모은 것이다. 이 영인본이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불교학 연구자들에게 사료로서 활용되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 출간의 뜻이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추적에서 얻은 중요한 소득은 일제 강점기에 소장 또는 정리 대상이 된 고서적들은 서울대학교 구간도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 도서, 국사편찬위원회의 중추원 및 조선사편수회의 작업 자료 사이에 존재하는 횡적 연결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국내 고문헌 자료에 대한 총합적 정리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정보가 아닌가 싶다.

이 영인본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우선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이 이 책의 영인을 허락해준 것,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왕실도서관 장서각의 관계자들이 이왕직 도서실이 매입한 당판도서들의 수장 상태를 확인할 기회를 제공해 준 것 등에 대해 고마움을 표한다. 그리고 경성제대 구간도서의 ‘도서원부’를 찾아 제공해준 고문헌 자료실의 송지형 연구사의 성의가 고마웠다. 관련 기초 조사를 도와 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박사과정의 金信會 씨, 동양사학과 박사과정의 유종수 씨, 두 사람의 노고에도 감사한다. 김신회는 이왕직 도서실에서 작성한 매입 당판도서 리스트를 현재의 장서각 도서에서의 수장 상태와 비교하는 목록을 작성해 주었고, 유종수는 매입 당판도서 중 쉽게 접하기 어려운 도서들에 대한 해제를 맡아주었다. 2015년에 대한민국 학술원으로부터 지원받은 연구비는 이런 공동작업을 수행하는 데 매우 유용했다. 영인본을 내면서 해설 논문이나 해제 등을 중국학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중국어 번역을 함께 싣기로 하였는데 중국어 번역은 崔桂花씨가 수고해 주었다.

한국역사연구원은 앞으로 공공기관이 쉽게 하기 어려운 주요 자료집 출간을 기획하여 ‘石梧문화재단 역사 자료 시리즈’를 내기로 하고 『永樂大典』 영인본 간행을 제1호로 삼았다. 이의 출판을 맡아준 태학사의 지현구 사장, 편집 작업을 맡은 최형필 이사의 노고에도 감사한다.


2017년 12월 일

韓國歷史硏究院長 李泰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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