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연구원 소식지 3호

한국 역사학계는 20세기 말 미·소간의 냉전체제가 와해됨으로써 연구수준을 높이고 전망을 확대할 수 있는 도약의 기회를 맞이했다. 약 70여 년간 우리에게 닫혀있던 소련과 중국의 문서고 개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의 굴레를 벗어나 온전하고 균형 잡힌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이에 소비에트 연방이 와해된 이후 ’20세기 최대의 문서고’로 불리는 러시아의 기록관들이 개방됨에 따라 러시아 소재 한국사 관련 자료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고조되었다. 러시아에서 생산된 기록물들은 정부 산하의 약 2,600개에 달하는 문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해당 문서관들은 3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다.

러시아 국립영화사진기록물 보관소(РГАКФД)

첫 번째 그룹은 러시아연방 각료위원회 산하의 기록관리청(Росархив) 소속 8개 문서관들이다. 1) 러시아연방 국립문서 보관소(ГАРФ), 2) 러시아 고대사 관련 국립문서 보관소(РГАДА), 3) 러시아 국립 역사문서 보관소(РГИА), 4) 러시아 국립 군사사 역사문서 보관소(РГВИА), 5) 러시아 국립 해군 문서관(РГАВМФ), 6) 러시아 국립 영화사진기록물 보관소(РГАКФД), 7) 러시아 사회-정치사 문서관(РГАСПИ)/ 구 현대사기록물 보존 및 연구센터(РЦХИДНИ), 8) 러시아 극동 역사문서 보관소(РГИА ДВ) 등이 있다.

두 번째 그룹은 대통령 및 주요 연방행정기관 산하 9개의 문서관이다.

1) 러시아 연방 대통령 문서관, 2) 러시아 연방 외무성 산하 역사-기록물 관리국(ИДД МИД), 3) 러시아 연방 대외정책 문서관(АВПРФ), 4) 제정러시아 대외정책 문서관(АВПРИ), 5) 러시아 연방 국방성 중앙 문서관(ЦАМО РФ), 6) 중앙 해군 문서관(ЦВМА), 7) 러시아 연방 보안부 중앙문서관(ЦАФСБ России), 8) 러시아 연방 해외 정보부 문서관(Арихив СВР России), 9) 러시아 연방 내무성 중앙문서관(ЦА МВД Росси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세 번째 그룹은 모스크바 및 지방 문서관리국 산하의 지방 문서관들이다. 1) 모스크바 중앙 역사 문서관, 2) 쌍뜨-페테르부르크 및 여타지방의 국립역사문서관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이에 속하는 문서관의 소장 자료들은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에 기여 할 수 있는 귀중하고 가치 있는 사료들을 포함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같이 방대한 러시아 문서관 가운데 다수의 가치 있는 사료들을 소장하고 있는 기관들을 1) 모스크바 2)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으로 구분하여 다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관(АВПРИ)

노령지역에서의 독립운동사에 대한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에게는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관(АВПРИ) 및 러시아 연방대외정책문서관(АВПРФ)의 소장 자료들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반도가 아닌 러시아에서 펼쳐진 항일독립운동은 러시아 정부의 대외정책 및 러일관계의 틀 속에서 운동의 성격과 특징이 규정되고 조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러시아의 대외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고찰은 한인 이주사 및 독립운동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 일조하리라 여겨진다.

이 문서관은 혁명 이전 시대까지 존속하였던 외무성의 모스크바 총문서국(МГАМИД) 및 페테르부르크 총문서국(ГАМИД) 그리고 제정러시아 외무성 위원회 소장 자료들을 중심으로 1946년에 설립되었다. 구소련의 해체 이후 1991년 현재의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관으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АВПРИ). 이곳에는 외무성 페테르부르크 총문서국, 페테르부르크 소재 외무성 위원회 문서국, 해외 주재 러시아대사관, 해외 공관 및 영사관 기록, 주요 외교관 개인 문서군, 협정원문 컬렉션 그리고 몇몇 특별한 컬렉션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를 분류하면 1) 외무성 중앙기관 관련 자료(1720-1910) 2) 해외 주재 대사관 및 여타 외교 공관 및 기관 관련 자료 3) 제정러시아의 대외관계와 관련된 임시외교기관, 문서자료 컬렉션, 마이크로필름 컬렉션 등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폰드(문서군) 134<Архив Война-1차대전 관련기간>는 러일 간의 외교 관계를 다루고 있다. 또 폰드 138(외무상 비밀문서)은 19세기 말 러·청 협상 및 러일전쟁 이후 러일협상 관련 비밀자료 그리고 1890년대의 외교문서들을 포함한 페테르부르크 총문서국 폰드(폰드 160)는 러일관계와 관련 외교정책 결정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주요문서들이 포함되어있다.

АВПРИ소장 문서군 가운데 일본 분과(Японский стол), 중국 분과(Китайский стол), 태평양 분과(Тихоокеанский стол), 러시아 외무성 보고서들(Отчеты МИД России), 페테르부르크 문서총국, 외무상 관방국, 프리아무르 주 총독부 외교담당관의 문서군에는 주한, 주일, 주중 러시아 외교대표부 및 영사들이 보낸 보고서와 상주서 및 외상들의 정책건의서 서울, 동경, 북경으로 보낸 외무성 훈령 등이 소장되어있다. 또 이곳에는 한국, 일본, 중국 및 여타 아시아 국가들을 관할하는 외무성 아시아국의 연례보고서들이 소장 되어있는데, 이는 러일, 한러, 러청 관계사의 본연의 모습을 복원시키고 이 지역에 대한 차르 정부의 입장을 밝히는데 도움을 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

2) 러시아연방 대외정책문서관(АВПРФ)

러시아연방 대외정책문서관(АВПРФ)에는 1917년 이후의 외무부(1946년까지 외무인민위원부) 문서들이 소장되어 있다. 1920-30년대 소련외교와 관련된 30개 폰드는 인민위원 비서 및 해외 외교공관장 관련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울러 각국 주재 소련대사관 관련 자료들과 국제연맹의 주관하에 개최된 테헤란회담(1943), 얄타 및 포츠담회담(1945)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국제연합회의(UN, 1945) 등 다양한 국제회의 관련 특별자료 컬렉션들이 소장되어 있다. 조약, 협정문 그리고 외국과 체결한 문서 관련 특별 컬렉션과 사진기록물 컬렉션도 별도로 소장되어 있다.

러시아연방 대외정책문서관(АВПРФ)은 1990년 8월부터 각료회의의 훈령에 따라 일반인들의 접근이 가능한 공개적인 문서관이 되었지만 거의 2/3가량의 문서가 여전히 비밀해제가 되지 않았다. 관련 직원들이 부족하여 폰드들의 비밀해제 작업이 지체되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1998년까지 1917-1965년간의 문서들은 일반인들의 접근이 허가되었으나 대사관 보고서와 같은 몇몇 범주의 문서들은 여전히 비밀해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1947년까지의 여러 회의 관련 기록들이 상당수 비밀해제 되었지만 1947년 이후부터의 자료는 연구자들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러시아연방 대외정책 문서관(АВПРФ)의 자료들을 이용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은 보관소 직원들이 필요한 자료들을 준비하고 필요하다면 신청한 자료들의 비밀해제 가능성을 검토해 볼 수 있는 시간 여유를 갖기 위해 미리 연구주제 및 체재 기간을 편지에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러시아연방 문서관(ГАРФ) 및 러시아 국립 사회정치사 문서관(РГАСПИ)

러시아연방 문서관은 제정러시아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황실 및 정부 관련 기관 문서들을 망라하고 있으며, 차르 정부 시기에서 1970년대 조·소 관계 자료들을 아우르고 있다. 이범윤 관련 문서를 비롯하여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차르 정부의 입장을 보여주는 다양한 문서들이 소장되어 있다.

또 러시아 국립사회정치사 문서관에는 소련공산당과 관계된 문서가 집중적으로 보관되어 있다. 레닌과 스탈린을 비롯하여 많은 정치가 개인 문서군과 코민테른, 프로핀테른, 나아가 코민포름에 이르기까지 러시아혁명 이후 만들어졌던 정치단체들에 대한 문서군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 문서관에는 러시아 한인의 역사를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 상당량 소장되어 있다.

4) 군사 관련 문서관(РГВИА; РГРВА; ЦАМО)

러시아 군사 관련 문서 보관소는 러시아혁명을 기점으로 분리해 혁명 전의 제정러시아 군사문서는 “러시아 國立 軍 歷史文書保管所”(РГВИА)에 소장되어 있으며, 혁명 후 2차 대전까지의 문서는 “러시아 國立 러시아 軍 文書保管所” (РГРВА),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현대까지의 군 관련 문서는 “러시아 연방 國防省 中央文書 保管所”(ЦАМО)에 각각 분산시켜 소장하고 있다.

1) 러시아 국립 군역사 문서 보관소((РГВИА)에는 혁명 전까지 제정러시아 군 관련 문서가 보존되어 있다. 특히 한국과는 러시아 군사교관단 문서와 고종의 러시아 공사관 체류 관련 문서가 보존되어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문서군 2000번의 문서철(4107, 4134)에는 한국 관련 정보장교로 활동한 비류코프가 작성한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관련 자료가 4건이 소장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 자료는 하얼빈 위수사령부 자료이며 주변국 정세에 대한 정보보고 자료의 일부이다.

2) 러시아 국립 군 문서 보관소(РГВА)는 혁명 이후부터 제2차대전까지 군사문제 관련 문서가 보존되어 있다. 혁명기에 소련 정부가 극동에서 결성된 조선혁명군 연대에 대한 문서가 있으며, 또한 2차 대전 이후 일본 관동군 포로명단 중에 약 1천여 명의 조선인이 포함되어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3) 국방성 중앙 문서 보관소(ЦАМО)는 1945년 8월 참전을 선언하면서 평양에 진주한 소련군 제25군과 6·25 전쟁의 공군 참전에 관한 문서가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문서관의 제도와 비밀문서 미해제 등으로 8.15 직후 평양에 진주한 소련 제25군에 대한 자료 일부와 소련 북한 군정에 대한 자료의 일부는 아직 조사되지 못하고 있다.

1) 러시아 역사 문서관(РГИА)

러시아 국립 역사 문서관은 러시아 최대의 역사문서 보관소이다. 이곳에는 19-20세기의 제정러시아의 주요 정부 기관 및 중앙부처에서 생산된 문서들이 망라되어있다. 이는 레닌이 1918년 6월 1일에 공포한 “소련기록관리 업무의 재조직 및 중앙집권화 법령”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소련 정부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 제정러시아의 정부 기구들이 해체, 소멸됨에 따라, 차르 정부에서 생산된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수집 보존하는 문제를 최우선의 과제로 설정하고 있었다. 이는 소비에트 정권의 확립과 학문적 발전을 위해 이전 시대 기록을 보존하는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이다. 이에 1918년 6월 1일 자 법령에 따라 차르 정부의 중앙부처와 사회단체들에서 생산된 방대한 문서들이 8개 분과로 구성된 통합문서고(Едины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архивный фонд)에 수집 이관되었다.

이 문서고의 제1분과에는 국가회의, 국가 의회, 각료회의 및 위원회 그리고 궁내부에서 생산된 문서들이 보관되었다. 제2분과에는 상원과 법무성 문서, 제3분과는 육군성 및 해군성, 제4분과는 문부성, 검열국, 마린스키 재단, 종무원 및 산하 기관, 그리고 군사학교 총국, 제5분과는 재무성, 농업성, 국가 자산성, 교통성, 지방감독국, 통상산업성, 제6분과는 내무성, 제7분과는 이른바 “혁명역사문서”라고 불리는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다. “혁명역사문서”는 나중에 모스크바의 혁명 문서관 및 대외 문서관으로 이관되었다. 경찰청, 첩보총국 그리고 여타 경찰 조사기관의 문서국 자료들이 이에 해당한다. 제8분과에는 정부기관의 출판물들이 수집 이전 보관되었다. 아울러 통합문서고 산하에는 과거 국가회의(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Совет) 부속도서관을 모태로 하여 법률도서관이 설치되었다.

이후 통합문서고는 수차례의 법률개정을 통해 분야별, 지역별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1922년 1월 22일 법령에 따라 통합문서고는 5개 분과로 분류되어, 1) 정치 2) 경제 3) 법률 4) 역사문화 5) 육, 해군 분과가 설치되었다. 또 1929년 2월 28일 통합문서고는 지역별로 분화되었는데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의 문서고로 이원화되었다. 그리고 1934년 중앙 역사 문서관의 레닌그라드 지부는 주제별 분화를 단행하여 1) 국민경제 문서관 2) 문화 및 일상 문서관 3) 해군 역사문서관 4) 육군 역사문서관으로 나뉘었다.

1941년 5월 14일 레닌그라드 역사 문서관 설치령에 따라 설립된 기관이 바로 레닌그라드 국립중앙 역사문서관이다. 이 법령에 따라 레닌그라드 국립중앙역사문서 보관소는 국민경제, 대내 정책, 문화 및 일상에 관한 문서관을 통합하였고 이 체제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 결과 러시아 역사문서관은 상술한 과정을 통해 다음의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주요자료들을 소장하게 되었다. 국가 최고 권력기관 자료, 법원과 행정기관 자료, 재정 통상 산업 교통성 산하 기관 문서, 농업성 궁내부 산하 기관과 개인 문서 자료, 문화 및 생활사 자료, 정부 문서 간행 및 출판 자료, 그리고 문서관 산하 도서관이 여기에 해당한다.

* 한국 관련 소장 자료

재무성의 대한정책 관련 자료는 문서군(Фонд) 560번, 목록(Опись) 28번에 상당한 부분 소장되어 있다. 러·청 은행 및 한·러 은행의 설립이나 만주를 관통하는 시베리아 철도를 부설하는 문제 등 다수의 사안은 재무상 비떼의 주도하에 지속적이면서도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이 시기, 특히 람즈도르프가 외무상에 취임한 1900년 5월 1일 이후부터 비떼는 러시아의 동아시아정책의 노선 결정 및 외교업무에 있어 주도적으로 역할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청국, 한국, 일본에서의 러시아의 이해와 관련된 업무는 재무상과 밀접한 관계이던 기관, 부서들이 담당하였다. 이 문서군에는 단지 한·러 간의 대외적, 경제적 관계에 관련된 사료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내외 정치 상황을 비롯하여 일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대한(對韓) 정책에 관한 보고서들도 있다.

– 327번 파일(제2차헤이그평화회의 소집)에는 제2차 헤이그평화회의 준비와 개최 및 결과와 관련된 1905년부터 1910년까지의 자료 316매가 소장되어 있다.

2) 러시아 해군함대 문서관(РГАВМФ)

러시아 해군함대 문서관은 러시아의 해군 창설과 기원을 같이한다. 1696년 뾰뜨르(Петр I) 대제의 적극적인 건의로 러시아 대귀족 의회에서 러시아해군 창설이 결정되었다. 뾰뜨르 대제 통치시기에 해군의 중앙기구들이 설치되었는데 해군본부 문서관도 그 당시 설립된 주요 기구 가운데 하나이다. 1724년 1월 17일 뾰뜨르 1세의 의해 공포된 ‘문서관 설치 및 공문서의 수집에 관한 칙령’은 러시아 해군과 관련된 기록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724년 7월 15일 해군본부 및 그 산하기관의 공문서 등을 수집 정리하기 위해 공문서보관자와 사본작성자를 임명하고 수집체계를 규정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초기의 기록보존 방식은 공문서 보관자의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기록들이 분류되고 이관되었다. 그러나 1764년부터 문서수집이 체계화되기 시작했으며, 사업담당자의 퇴직 및 사망과 관련된 개인적인 사유에 근거하여 문서가 수집 이관되었던 과거의 관례에서 벗어나 사업의 종료 시, 문서과에 이를 이관하여 보존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1827년 해군본부가 해군성으로 확대개편 되면서 문서수집 및 보존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졌다. 1828년부터 문서의 분류, 정리 및 보존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설치됨에 따라 기관 및 산하 조직별로 문서가 분류되고 연대순으로 자료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문서의 간단한 제목들을 정리한 목록이 만들어졌으며 문서의 보존기법이 발달하면서 제본을 하기도 했으며 가치 평정도 이루어졌다. 1848년부터 육군성에서 사용하던 3단계의 문서분류 방식이 도입되었다. 아울러 1853년부터 문서검색을 위한 목록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의 해군성 문서들을 개관하는 10권 분량의 해제집도 1873부터 약 30년에 걸쳐(1906까지) 출간되었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1918년 7월 1일 문서보관사무의 재조직과 집중화에 관한 법령이 공포되면서 성급 단위의 개별문서관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다. 해군성문서관은 독자적인 기관이 아니라 통합문서고의 제3분과의 해군국에 소속되었다. 그러나 1934년부터 독자적인 해군역사문서관이 존재하게 되었고 1937년 국립 해군문서관으로 개칭한 후,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국립 해군함대 중앙문서관으로 개편된 후, 1992년까지 이 체제가 유지되었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주요사료들은 치칼로프로 이송되었고 나머지 사료들은 보관소 직원들의 주택 지하실이나 보관소 건물 지하에 은닉되기도 하였다. 전후 후송된 문서들이 원상 복귀되고 정리하는 작업은 1963년까지 지속되었고 현재의 문서관의 기록물 보존체계는 이러한 전후 문서정리 사업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소련의 와해 직후 1992년 6월 24일 국립해군함대중앙문서관은 러시아 국립 해군함대 문서관으로 개편되었고 러시아연방 기록관리청 소속이 되었다. 1926년 제정러시아의 국가회의 소속 문서국 건물을 인수한 해군성 문서관은 현재 시 외곽으로 이전 준비 중이다. 이는 현재 페테르부르크의 도서관 및 문서관에서 목격되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해군성문서관에는 17세기말부터 1940년대까지의 해군관련 자료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에 문서관에는 혁명이전과 이후의 문서들이 동시에 보존되어 있는데, 1917년 11월 7일을 기준으로 소비에트 시대의 문서철에는 혁명을 뜻하는 단어의 첫 글자인 “P”자를 붙여 이를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해군성문서관의 특징은 제정러시아와 소비에트러시아 두 시기에 걸친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다는데 있다. 현재 해군성문서관에는 1268개의 문서군(Фонд)이 있으며 약 120만 건의 문서철이 있다. 해군성 문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폰드 내 모든 자료들은 러시아연구자와 외국인 연구자에게 동등하게 열람이 허용되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 해군성문서관의 열람실에서는 외국인도 자료대출이 가능하게 되었다. 현재 해군성문서관에 소장된 문서군(Фонд) 가운데 한국관련 자료를 포함하고 있는 폰드는 약 25개이다.

러시아에서 수집되어 국내로 이전된 한국사 관련 자료들은 시기와 주제별로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19세기 말 동아시아를 둘러싼 열강의 국제관계 및 정세 보고, 둘째, 1860년 이후 조선인의 러시아로의 이주, 러일전쟁 이후 연해주 의병과 독립운동, 셋째, 식민지시기 민족해방운동, 코민테른 자료 및 고려인 강제이주 자료, 마지막으로 해방이후 한국전쟁과 북한현대사 등이다. 그 규모는 현재 국내 각 기관에서 분류와 가공을 거쳐 공개된 자료만 약 1,230 편철의 37,000여장에 이른다. 이는 국내에 이전된 미공개 자료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더욱이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를 비롯한 대학연구팀들은 한국연구재단과 한국학진흥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현재 러시아 소재 한국근현대사 관련 자료수집과 정리를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 중에 있다. 이에 러시아 문서관 소장의 한국사 관련 자료들에 대한 전문적인 번역, 감수 해제 작업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기본적인 자료 축적 토대위에 새로운 사료발굴과 정리 사업이 이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러시아 자료수집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망하고자 한다.

이는 수집문서의 활용도를 극대화시키는데 방점이 찍힐 것이다. 이를 위해 대중의 열린 플랫폼인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여 텍스트, 이미지, 영상자료를 포함한 열린 디지털 아카이브를 개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한·러 관계사 및 한국근현대사 관련 문서, 사진, 다큐멘터리 등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일반연구자 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역사 이해 및 관심을 제고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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