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과 인구 그리고 농업기술


이태진 저 | 태학사

출간일: 2002년 8월 25일

쪽수: 502

ISBN-13: 9788976267887


출판사 서평

조선왕조의 중농정책이 나온 사상적 근거, 정책의 구체적인 면모와 성과, 사회변동에 끼친 영향 등을 심층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조선시대 사회의 ‘유교자본주의론’에 대한 한국사 연구자의 견해를 밝힌, 서울대 이태진 교수의 연구서, {의술과 인구 그리고 농업기술}이 도서출판 태학사에서 나왔다. 

고려말의 신흥사대부들이 신유학 수용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生生之德](생명이 있는 것을 살아가게 하는 덕)이었다. 하늘의 큰 뜻인 이 덕을 인간 세상에 실현하는 것이 곧 왕정의 임무라는 유교적 王政觀이 확립되면서 조선왕조는 民의 衣食住 해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다음과 같은 성과를 거두었던 것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1) 토산 약제를 활용하는 의술(향약의술=한방의술)을 높은 수준으로 발달시켜 소아사망률이 높았던 고려시대까지의 고·중세형 인구현상을 극복하여 농업발달의 기초인 농업노동력을 크게 증대시켰다. 

(2) 농업기술 발달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고려시대까지의 휴한농법이 인공적인 거름주기 기술의 개발로 常耕農法이 보급되는 가운데 농경지가 미고지(구릉)에서 低平地로 이동하여 크게 확대된 과정을 실증적으로 밝혔다. 의술과 인구 정책의 성과가 나타나면서 농경지 확대가 가능했던 점, 새로 확보된 저평지에 수리시설이 단계적으로 확보되는 관계 등을 유기적으로 실증하였다. 

(3) 오늘날 흔히 보는 저평지를 중심으로 한 상경농법은 조선초기 특히 세종대를 중심으로 획득된 것이다. {농사직설}과 {향약집성방}의 편찬에서 보듯이 세종대왕시대는 농업경제의 획기적 발달기로서, 고려말부터 진행되어온 새로운 시대적 추세를 국가적 차원에서 의술·인구·농업기술 3자의 연관관계를 인식하여 기획적으로 정책을 폄으로써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세종대왕의 모든 치적은 농업경제상의 성과를 바탕으로 가능했다. 

이 책의 지닌 연구방법상의 성과로는
1) 고려말에서 조선초기의 사회변동의 실체를 구명하기 위해 인구문제를 개입시킨 것은 처음 가진 시도였다. 고려시대의 인구 수에 관한 자료는 거의 없다시피 하여 이 분야 연구가 어려웠는데, 이 연구는 고려시대 묘지명 260여 개의 내용을 분석하여 우리나라 사회가 고려전기(12세기)까지도 높은 소아사망률에 시달렸던 것을 밝혔다. (귀족가문이라도 평균 5명의 자연출산아 중 2∼2.5명만 성인으로 키울 수 있었다) 

2) 고려후기 인구증가의 배경으로 농업기술 발달과 함께 의술발달이 기여한 점을 처음 밝혔다. 고려후기가 우리나라 土産藥劑를 활용하는 醫術(鄕藥醫術=韓方)의 발달기란 것은 의학사 분야에서 1950년대 이래 밝힌 것인데, 이 연구는 이를 일반사 연구에 활용하여 이 시대(세종대가 중심 시대) 농업경제 발달의 기초가 된 사실을 밝히는 성과를 거두었다. 

3) 인구증가로 농경지가 미고지(upland)에서 저평지(lowland)로 이동하여 농경지가 크게 확대된 사실을 밝힌 것도 국내학계에서는 최초였다. 고려시대까지는 고지 밭농사가 많았는데, 고려말부터 저평지에 설정되었던 국가의 목마장이 섬으로 이동하고, 16세기에는 서남해안 간척지 개간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등 저평·저습지 개발이 조선전기의 중요한 농업동향이었던 것을 밝혔다. 인구증가와 농경지 변동에 관한 연구는 서양역사학계에서는 이전부터 전근대 사회경제 변동의 중요한 연구과제였다. 

4) 조선시대 유교는 현실문제 특히 민의 생계에 대해 관심이 없는 관념적인 사상으로 오해되는 경향이 강하였는데, 이 연구는 조선시대 유학이 오히려 民의 생활개선과 국가의 경제력 향상에서부터 출발하여 그 성과로 지배사상으로서의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관계를 밝혔다. 이런 연구성과는 조선시대 유교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목차

서언

1. 고려시대의 중세적 특질과 한계

2. 향약의술 발달과 고중세형 인구제약의 극복

3. 저평지 개간과 수전농업발달

4. 유교적 경제발전 모델에 대한 역사적 변론

참고논문

참고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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