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 전하는 永樂大典 (영락대전)
2018년 03월 15일 출간
목차
간행사
Ⅰ. 해설
永樂大典, 어떤 책인가? / 李泰鎭
‘李王職’ 소장의 永樂大典 1책 매입 경위 추적 – 朝鮮總督府의 中國 古文獻 대량 매입의 의도 – / 李泰鎭
「永樂大典殘闕本ニ就テ(永樂大典 殘闕本에 대하여)」 [日文]
/ 朝鮮總督府 李王職圖書室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永樂大典 현존본 일람표 (잔존 권수와 소장기관)
Ⅱ. 원본 (사진)
『永樂大典』 卷8782, 8783(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등사본]) 표지
卷之八千七百八十二 十九庚 僧 襍錄諸僧四
卷之八千七百八十三 十九庚 僧 襍錄諸僧五
Ⅲ. 唐版財産目錄 일람표 및 수록 도서 해제
‘李王職’의 「唐板財産目錄」 일람표 – 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왕실도서 藏書閣의 소장 현황 조사 / 金信會 작성
唐版財産目錄 도서들의 해제 / 柳鍾守
Ⅳ. 中文翻译部
出版寄语
永樂大典是什么样的书? / 李泰镇
‘李王职’所藏《永乐大典》一册购入过程追踪-朝鲜总督府大量购买中国古文献之意图 – / 李泰镇(崔桂花 译)
<唐版财产目录>主要图书题解 / 柳钟守(崔桂花 译)
출판사 서평
韓國에 전하는 중국 국가 급 문물 『永樂大典』
태학사는 한국역사연구원의 ‘石悟 역사연구자료 시리즈’ 제1호로 『永樂大典』 영인본을 출간했다. 간행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영인본 『永樂大典』 卷之八千七百八十二, (卷之八千七百八十三) 1책은 비록 1935년에 생산된 등사본이라고 할지라도 학술적으로는 현 중국의 ‘국가급 문물 2등’에 준하는 귀중본으로 귀중한 역사적 자료이다. 편찬자인 한국역사연구원장 이태진 교수는 중국 국가급 문물인 “한국에 전하는 『永樂大典』”의 전존(傳存) 경위와 내용, 그리고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를 꼼꼼히 밝히고 있다. 『永樂大典』에 대한 해설과 원본(사진), 일람표 및 수록 도서 해제 등을 통해 역사적 자료의 가치와 의의를 드러내고 있는 이 책은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사료로 활용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백과사전 『永樂大典(영락대전)』을 발견하다》
『永樂大典』은 중국 명나라 초기 永樂帝 成祖(재위 1402~1424) 때 편찬된 문헌 백과사전이다. 대영백과사전이 이 책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백과사전이라고 평가하였다. 본문 22,877권, 목록 60권을 1책 당 2권으로 묶어 10,095책, 글자 수가 약 3억 7천만에 달하였다고 한다. 필사본으로 당초 1질이던 것을 嘉靖帝 世宗(1506~1566)이 화재로 인한 소실을 우려하여 1질을 더 필사하여 만들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큰 거질이 현재 겨우 800여 책만 전하고 있다. 청나라의 국운이 기울어 내우외환이 거듭하던 중에 그 많은 책들이 흩어지고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중국 국내에 남은 것들은 ‘국가 급 문물 2등’으로 지정되어 소중하게 보존되고 있다. 이렇게 귀중한 책 하나가 서울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의 도서 중에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 때 수집된 책들을 구간도서(舊刊圖書)라고 부르는데 그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편찬자는 2000년대 초반에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여 소장 경위를 확인하고 그 의의를 밝히고 “韓國에 전하는 『永樂大典』”으로 출간하게 된다.
《국가 급 문물 『永樂大典』》
영인본 『永樂大典』 卷之八千七百八十二, (卷之八千七百八十三) 1책은 비록 1935년에 생산된 등사본이라고 할지라도 학술적으로는 현 중국의 ‘국가급 문물 2등’에 준하는 귀중본이다. ‘국가급 문물 2등’이라면 한국으로 치면 ‘국보’ 또는 그다음의 ‘보물’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 사실은 중국 측에서는 파악하고 있지만 국내 학계는 잘 알지 못하는 상태이다. 책의 내용은 ‘僧’자 韻에 해당하는 명나라 이전의 불교 서적들의 기록들을 모은 것이다. 이 영인본이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불교학 연구자들에게 사료로 활용되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 출간의 목적 중 하나이다. 특히 등사 후 그 원본이 현재 없어진 상태에서는 이 등사본이 해당 책자의 내용을 ‘유일’하게 전하고 있기에 그 학술적 가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石梧(석오) 역사연구자료 시리즈를 기대하며》
한국콜마(회장 윤동한)의 교육과 역사에 대한 애정은 유명하다. 그래서 윤동한 회장이 설립한 석오문화재단을 통해 시작되는 한국연사연구원의 ‘石梧(석오) 역사연구자료 시리즈’는 공공기관이 쉽게 하기 어려운 주요 자료집의 활발한 출간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 시리즈의 제1호인 『永樂大典』 영인본 간행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간 행 사
『永樂大典』은 중국 명나라 초기 永樂帝 成祖(재위 1402-1424) 때 편찬된 문헌 백과사전이다. 대영백과사전이 이 책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백과사전이라고 평가하였다. 본문 22,877권, 목록 60권을 1책 당 2권으로 묶어 10,095책, 글자 수가 약 3억 7천만에 달하였다고 한다. 필사본으로 당초 1질이던 것을 嘉靖帝 世宗(1506-1566) 이 화재로 인한 소실을 우려하여 1질을 더 필사하여 만들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큰 거질이 현재 겨우 800여 책만 전하고 있다. 청나라의 국운이 기울어 내우외환이 거듭하던 중에 그 많은 책들이 흩어지고 없어져 버렸다. 중국 국내에 남은 것들은 ‘국가 급 문물 2등’으로 지정되어 소중하게 보존되고 있다. 이렇게 귀중한 책 하나가 서울에 남아 있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의 도서 중에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 때 수집된 책들을 구간도서(舊刊圖書)라고 부르는데 그 중에 포함되어 있다. 편찬자는 1990년 대 초반에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였지만 소장 경위를 확인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 책에 실린 해설 논문의 내용을 요약하여 간행사로 대신한다.
이 책은 1914년 11월 조선총독부 산하의 李王職圖書室이 일본 京都帝國大學의 內藤湖南의 추천으로 매입한 것이다. 당시 이왕직도서실의 일본인 관계자들은 이 기관의 예산으로 중국 고서인 이른바 唐板圖書를 대량으로 매입하고 있었다. 이 『永樂大典』을 산값은 200圓으로 다른 매입가에 비해 격간의 차이가 있다. 권 8782, 8783 두 권이 한 책으로 묶어진 것이다. 1986년 北京 中華書局에서 간행된 張沈石의『永樂大典史話』에 위 권수를 밝힌 1책의 소재지를 “南朝鮮 舊京 李王職 文庫”라고 명기하였다. 중국의 서지학자들은 이 책이 서울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편찬자는 2010년 9월 말에 국사편찬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이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中樞院 및 朝鮮史編修會의 작업 자료들을 서고에서 접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그 수장고의 한 서가에서 우연히 뽑아 든 책자에 「永樂大典 殘闕本에 대하여(永樂大典 殘闕本に就いて)」(4B6B 44)란 제목이 붙어 있었다. 거기에 이 책의 매입 경위가 자세히 밝혀져 있었다. 매입 당초에 ‘僞物’(僞作)이란 말이 있었지만 관계자들이 검토 끝에 가정제 때 필사된 진본이란 판정을 내린 내용이었다. 이왕직도서실로 하여금 이 책을 사도록 추천한 사람이 경도제국대학의 저명한 역사학자 內藤湖南란 것도 밝혀져 있었다.
조선총독부 산하의 이왕직 도서실의 책들은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왕실도서관’ 藏書閣에 보관되어 있다. 그래서 위 논문을 읽은 뒤에 급히 이 쪽의 정보를 뒤져 이왕직도서실의 도서 구입 장부인 「唐版財産目錄」에서 1914년에 『永樂大典』 1책을 매입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다. 1910년 10월부터 1914년 11월까지 唐板圖書 680여 종(2만여 책) 가운데 포함되어 매입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뒤이어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이 보관하고 있는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의 ‘圖書原簿’를 통해 1935년에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이 이 책을 이왕직도서실로부터 빌려 ‘謄寫’를 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서원부’에 따르면 1935년(昭和 10년) 3월 22일 ‘謄寫’ 작업에 대한 결제가 이루어지고 6월 11일에 등사가 이루어 진 것을 ‘製本’하여 도서로서 ‘생산’되어 비치하게 되었다. 한편 이 ‘등사본’의 뒤표지 안쪽에는 “昭和 10년 2월 李王職 소장 寫本으로부터 謄寫함”이란 기록이 있었다. 종합하면 1935년 2월에 이왕직으로부터 원본인 필사본을 빌려서 3월 22일에 ‘등사’를 마친 뒤 6월 11일에 제본을 완료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조사가 완료된 순간에 ‘등사’의 대상이었던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절차상, 경성제대 부속도서관은 등사를 마친 뒤 원본을 이왕직도서실로 반납했겠지만,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 도서에서 이 책은 소장되어 있지 않다. 경성제대 부속도서관이 이를 반납하는 과정에서 실종되었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결국 현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등사본’은 현재로서는 내용상 유일본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을 영인본으로 출간하는 뜻도 여기에 있다.
영인본 『永樂大典』 卷之八千七百八十二, (卷之八千七百八十三) 1책은 비록 1935년에 생산된 등사본이라고 할지라도 학술적으로는 현 중국의 ‘국가급 문물 2등’에 준하는 귀중분이다. 내용은 ‘僧’자 韻에 해당하는 명나라 이전의 불교 서적들의 기록들을 모은 것이다. 이 영인본이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불교학 연구자들에게 사료로서 활용되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 출간의 뜻이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추적에서 얻은 중요한 소득은 일제 강점기에 소장 또는 정리 대상이 된 고서적들은 서울대학교 구간도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 도서, 국사편찬위원회의 중추원 및 조선사편수회의 작업 자료 사이에 존재하는 횡적 연결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국내 고문헌 자료에 대한 총합적 정리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정보가 아닌가 싶다.
이 영인본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우선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이 이 책의 영인을 허락해준 것,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왕실도서관 장서각의 관계자들이 이왕직 도서실이 매입한 당판도서들의 수장 상태를 확인할 기회를 제공해 준 것 등에 대해 고마움을 표한다. 그리고 경성제대 구간도서의 ‘도서원부’를 찾아 제공해준 고문헌 자료실의 송지형 연구사의 성의가 고마웠다. 관련 기초 조사를 도와 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박사과정의 金信會 씨, 동양사학과 박사과정의 유종수 씨, 두 사람의 노고에도 감사한다. 김신회는 이왕직 도서실에서 작성한 매입 당판도서 리스트를 현재의 장서각 도서에서의 수장 상태와 비교하는 목록을 작성해 주었고, 유종수는 매입 당판도서 중 쉽게 접하기 어려운 도서들에 대한 해제를 맡아주었다. 2015년에 대한민국 학술원으로부터 지원받은 연구비는 이런 공동작업을 수행하는 데 매우 유용했다. 영인본을 내면서 해설 논문이나 해제 등을 중국학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중국어 번역을 함께 싣기로 하였는데 중국어 번역은 崔桂花씨가 수고해 주었다.
한국역사연구원은 앞으로 공공기관이 쉽게 하기 어려운 주요 자료집 출간을 기획하여 ‘石梧문화재단 역사 자료 시리즈’를 내기로 하고 『永樂大典』 영인본 간행을 제1호로 삼았다. 이의 출판을 맡아준 태학사의 지현구 사장, 편집 작업을 맡은 최형필 이사의 노고에도 감사한다.
2017년 12월 일
韓國歷史硏究院長 李泰鎭